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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야기

[사진이야기] 양색시 성병 치료하던 데였죠.



미군병원이라고 불렀어요. 적성의원요? 그건 모르겠고... 그 뭐라고 할까... 양놈들 상대하는, 왜 그 양색시 거시기 하던(성병 치료) 데였어요. 돈 엄청 벌었죠. 저기 저 아래, 경찰 파출소 자리에서 그거 진료를 하다가 이쪽에 병원을 짓고 옮겨온 거예요. 그때 미군들이 건축 재료를 많이 도와줬어요.” 미군 기지촌이었던 장파리 주민들은 이 병원을 이렇게 기억했다.

 

 주민들은 병원 건물이 지어진 때를 1958년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파주시 건축물대장에는 1965년 신 아무개 씨가 건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건소에도 의료기관 등록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당시 기지촌 특성상 그냥 집을 지어 운영하다가 미군 철수와 함께 건물을 매각하면서 뒤늦게 건축물 신고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군병원으로 불렸던 이 병원에서 1960년대 서무(사무장)를 담당했던 손 아무개 씨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손 씨는 병원 이름이 평화의원이었다. 입원실이 다섯 개 있었으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검진만 했다. 그러다가 이 평화의원은 미군 철수와 함께 문을 닫았고,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에 다시 병원을 내면서 이 병원도 평화의원으로 부르게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기지촌 성병 감염은 한국과 미국의 외교적 문제였다. 1969년 닉슨독트린 정책은 경기도 운천의 미 제7사단 제1여단 사령부 캠프 카이저 폐쇄를 시작으로 18천 명의 주한미군을 감축했다. 박정희 정권은 기지촌정화운동을 추진하는 등 성병 검진을 강화했다. 1971년 기지촌정화위원회를 발족하고 예산 115천만 원을 책정해 경찰을 비롯 지역 보건소와 부녀계 직원들로 관리팀을 구성하고 강제 검진과 단속을 벌였다.

 

 특히 성병에 감염된 미군이 그 숫자를 기억했다가 의료 당국에 알릴 수 있도록 기지촌 여성들의 가슴에 번호 또는 영어로 쓰인 명찰이나 보건증을 착용하도록 했다.

 

 박정희 정권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성병관리소(몽키하우스) 설립을 전국 기지촌 자치단체에 지시했다. 파주에는 법원읍(천현면) 초리골에 파주군성병관리소가 최초로 세워졌으며, 이어서 파주읍(주내면) 연풍리에 파주군 제2성병관리소가 설립됐고, 이를 통합한 파주군성병관리소가 현재의 파주시교육문화회관 자리에 설립됐다.

 

 성병진료소는 문산 선유리 미군 헬기장과 파주읍 용주골에 세워져 일 주일에 두 차례씩 강제 검진을 받도록 했다. 검진 결과 낙검자는 금촌 성병관리소에 강제 수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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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사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파주시의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페쇄를 위한 여행길 걷기 행사가 30일 진행됐다. 참가자 대부분이 공무원이다. 참가자와 집결지 종사자들의 충돌을 우려해 경찰 기동대가 땡볕에 열을 지어 서 있다. 검은 옷에 모자를 눌러 쓴 성노동자와 여성단체 회원들도 일찌감치 찾아온 무더위와 싸우고 있다. 모두 고생이다. 경찰 무전기로 용주골 문화극장에 모여 있던 여행길 참가자 소식이 들려온다. 80명이 이동했다는 연락이다. 경찰 기동대 발소리와 함께 성노동자와 업주들도 긴장하기 시작한다. 여행길 참가자들이 갈곡천 연풍교를 지나는 모습이 가림막 틈 사이로 보인다. 여행길 참가자들이 집결지 안으로 들어온다. 참가자들은 “김경일 파주시장 때문에 연풍리 1-3구역 재개발의 희망이 무산됐다.”라는 내용의 펼침막 20여 개가 걸려 있는 길을 따라 걷는다. 참가자들은 성노동자 대기실인 유리방을 힐끗힐끗 들여다본다. 한 참가자는 유리방 안에 있는 빨간색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에 앉아 있는 건가 봐.”라며 호기심에 찬 손짓을 한다. 갈곡천 콘크리트 제방과 집결지 건물 사이의 그늘막을 벗어나자 한 참가자가 양산을 꺼내 쓰고 성노동자들을 구경하듯 쳐다보며 걷는다. 그러자 한 여성단체 활동가가 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