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친밀의 정도와는 관계없이맛이 있는 사람이 있고, 무맛인, 맛이 없는 사람이 있다.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속성이다. 어쩔 수 없다. 맹탕인 경우, 즉 생각 없는 사람들은겉모습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와는 관계없이관심 영역에 들어오지 않는다.여기에 허세까지 부린다면, 끝이다. 또한 아무리 현란한 말들을 해도,지 말이 아니고, 남의 말만 하는 사람 역시그 지식에는 잠깐 관심이 가다가도,금세 관심이 식어버린다.식자들 가운데 진짜 많다.이름하여 영혼 없는 '지식인' 같은 거…. 관심이 식어버리는 또 하나의 대상은뭔가에 씌여 사는 사람들이다.이념이나 종교, 조직이나 권력,심지어는 인기까지,뭔가를 절대시하고, 숭배하는 사람들 역시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잘 지은 책 한 권 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맛 없다.이런 사람들 목소리는 강해도, 속이 허약한 경우가 많다. 살면서 제일 멋지고 맛이 있는 사람은무엇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능력까지 갖추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렇지 않아도 좋다.권력이든, 돈이든, 때로는 인간관계든 두려워 않고,지 꼴린 대로 생각하고, 거침없이 말하고,생각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강호'에 이런 이들이 더러 있다.
며칠 전 지역에 갔다, '통'하는 이를 만났다. "애 많이 쓰셨는데, 낙선하셨네요! 이제 뭐 할 거요?" 묻자, 그 사람 하는 말, "원래 바닥에서 시작하였으니, 다시 돌아가야지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주민 활동가로 '복귀'한단다. 정상적인 사고인데, 다수가 그렇지 않으니, 새롭게 보었다. 자리가 뭐라고, 가방 들고, 아는 지인들 찾아다니며, 이 자리 저 자리 맥락 없이 기웃거리는 '건달들'이 넘쳐난다. 아직도 '자리'를 신분으로 여기고, 그 신분 지키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무슨 일인들 제대로 마음 쓰며 할 것인가? 아직도 조선 시대 관료들, 중앙에 줄 대면서 이 자리 저 자리 신분 상승에 도움 될 자리 찾아 헤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비슷하지만 또 하나의 꼴불견은, 낙선한 '국회의원들'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평생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고급정보를 4년~8년을 접하고도, 국회의원 떨어지면 할 일 없어 빌빌대고, 여의도 주변만 어슬렁거리며, 다음 기회만 노리고 있으니,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토니 불리어, 카터 할 것 없이 수많은 세기의 정치인들이 현업에서 물러나, 더 크고 웅대한 일을 하고, 또 더러는 현실 정치에서 경험한 것을 기반으로
특별한 정당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4.10 총선 후, 여당에서 수도권 패배에 대해 평가를 한답시고, 만들어진 이런저런 공간에서 오가는 말들을 간간이 들으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 한심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해서 몇 마디 적는다. 이 사람들 토론회를 보면서, 연상되는 것은 “여기가 다리야, 코야, 배야”를 더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현상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데, 실체에 대한 인식은 없다. 실체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말과 말을 연결하여 논리를 세울 수가 없다. 그냥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은 말하고 있을 뿐이다. 원인 분석이 사람 수 만큼 많다. 이들은 아직 코끼리의 실체를 탐구한 적도 없고, 탐구할 의지도 없었다. 쉽게 말해, 이들에겐 21세기, 2024년을 살아가는 대중과 시민에 대한 종합적인 조망이 없다. 그들의 구성뿐 아니라, 그들을 움직이는 동력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욕구를 어떻게 결집하고 배출하는지에 대한 동력학적 이해가 빠져 있다. 2008년처럼, 운이 좋아, 그들의 욕구가 바깥으로 분출하였을 때, 잔머리로 이를 낚아채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위 세상의 절반인 '시민사회'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 시민사회에 대한 인
공무원, 수업료라도 내든지.. 5-6공 때만 해도, 공무원은 베버식으로 말하면 테크노클리트였다. 변변히 배운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절에 공무원은 그나마 글 좀 읽고, 법을 배운 몇 안 되는 계층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사회적 인프라가 적어, 국가나 행정업무를 공무원이 직접 처리했다. 실력이 쌓여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런 역량과 실천이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공무원 대부분이 말 그대로 견습생 수준이다. 우선 공무원의 수준이 일반인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공무'랍시고 달려드니, 참 우스운 꼴을 많이 보게 된다. 사람들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고, 말귀를 제대로 알아먹는 경우도 드물다. 일은 해야 하니, 자기 편할 대로 좁히고 줄이고, 틀어서, 제 깜냥껏 하면서, 시민들 불만만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거기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돈 많겠다, 용역사들 부려먹는다. 그러니 현장(또는 시민의 삶)과는 점점 멀어지고, 정확하게 무식하면서 큰소리치는 관리자 모드로 변하게 된다. 관리자 역할이라도 잘할까? 다양성과 차이가 상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수직적 위계에 의한 지시와 명령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젊음을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이고 가혹한 사람일수록 윗사람에게는 굴종적이고 아부가 심하다. 반면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자애로운 사람일수록 위로부터의 부당한 지시와 강요에 저항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 역량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즉 아랫사람에게 권위적이고 가혹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능하다. 문제의 맥을 짚고 아랫사람들이 일할 만한 조건을 만들 능력이 없으니, 한낱 지위로 사람을 다스리려 든다. 그것 말고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역량을 보일 수 없으니 윗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부뿐이다. 반면 일의 규모와 맥락, 아랫사람의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무리할 일이 없으니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자애로울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도와줄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기에, 무리한 지시나 강제가 필요 없다. 이것이 능력이요, 역량이다. 사회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역량에 맞게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 파주바른신문은 최근 공직사회 안팎으로 회자되고 있는 ‘나랑 같이 일할 수 있겠어요?’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한국공론포럼 박태순 상임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옮겨왔다. 박 대표는 지난해 대추벌 성매매집결지를 방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