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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제3부 ‘마을 사람들이 벽돌 찍어 지은 교하재건중학교’


임진강과 한강을 만난 겨울바람이 심학산 억새 허리를 휘감아 바울’, ‘가자울’, ‘각절미’, ‘대추골을 후려친다. 1966년 교하면 동패2리는 하루에 버스 서너 번 다닐 정도로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삽다리 쪽으로 걸어가는데 무슨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가까이 가 보니 구렁텅이에 빠진 차를 두 사람이 꺼내느라 낑낑대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차를 꺼내 줬죠. 그게 교하재건중학교를 설립하게 된 동기였어요.” 19661월 군대를 갓 제대한 정성환(77) 씨의 기억이다.

 

 정성환 씨가 이때 만난 사람은 미국에서 온 베스킨선교사와 한국의 김우생 전도사였다. 이들은 바울(동패2)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었다. ‘바울이라는 지명은 마을을 둘러싼 바위가 마치 울타리 같아 붙여진 이름인데 암동이라고도 불렸다.

 

 “선교사님이 우리 마을에 교회를 짓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거의 민속신앙을 가까이하고 있는 터여서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웠죠. 그러다가 주민들이 큰 건물 하나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도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제가 선교사님에게 우리 지역에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학생들이 무척 많은데 교회를 배움터로 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안을 했죠.”

 

 ‘베스킨선교사는 196626일 마을회관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 선교사는 벽돌 찍는 장비를 들여와 주민들과 함께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벽돌 하나하나를 찍어 드디어 1967파주성서침례교회가 세워졌다. 아이들이 중학교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꿈 같은 희망에 마을 사람들은 하나가 됐다.

 

 “당시 건국대에 다닌 황계선이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수업을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죠. 그리고 송포, 심학, 청석, 지산초교를 찾아가 중학교 진학을 못 한 학생 명단과 주소를 받아 부모님을 만나 재건중학교 입학을 말씀드렸어요. 자식을 가르치지 못해 마음 아파했던 부모님들 모두 무척 좋아하셨어요.”

 

 정성환 씨는 밤이 되면 집이 제법 큰 친구 집에 마을 청년들과 모여 학생모집 벽보를 직접 써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마을 곳곳에 붙였다. 그런 노력 끝에 120명의 학생이 모집됐다. 그러나 이 중 80명이 입학을 했고, 나중에는 60여 명 정도가 수업에 참여했다.

 

 1967년 마을 사람들의 힘으로 세워진 교하재건중학교는 교회에서 지원한 교사 4명과 정 씨의 친구 황계선 씨 등 5명의 교원이 참여해 1학급으로 개교했다. 그러다가 197531명으로 줄어들기 시작해 결국 학교 문을 닫았다.

 

 “학력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였지만 그래도 그 시대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배움터였습니다. 당시 재건학교는 다른 정규학교에 편입할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졸업생들 중에 현재 축협조합장을 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 곳곳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파주 재건학교 출신들의 모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배움터를 만들어 준 파주성서침례교회는 현재 운정3지구 개발로 교하동 당하리로 옮겼고,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던 청년 정성환 씨도 교하동 연다산리로 이사를 했다. 정 씨의 자녀는 파주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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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마을 사람들이 벽돌 찍어 지은 교하재건중학교’ 임진강과 한강을 만난 겨울바람이 심학산 억새 허리를 휘감아 ‘바울’, ‘가자울’, ‘각절미’, ‘대추골’을 후려친다. 1966년 교하면 동패2리는 하루에 버스 서너 번 다닐 정도로 아주 깊은 산골이었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삽다리 쪽으로 걸어가는데 무슨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가까이 가 보니 구렁텅이에 빠진 차를 두 사람이 꺼내느라 낑낑대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 차를 꺼내 줬죠. 그게 교하재건중학교를 설립하게 된 동기였어요.” 1966년 1월 군대를 갓 제대한 정성환(77) 씨의 기억이다. 정성환 씨가 이때 만난 사람은 미국에서 온 ‘베스킨’ 선교사와 한국의 김우생 전도사였다. 이들은 바울(동패2리)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땅을 알아보고 있었다. ‘바울’이라는 지명은 마을을 둘러싼 바위가 마치 울타리 같아 붙여진 이름인데 ‘암동’이라고도 불렸다. “선교사님이 우리 마을에 교회를 짓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마을 사람들이 거의 민속신앙을 가까이하고 있는 터여서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웠죠. 그러다가 주민들이 큰 건물 하나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도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 제가 선교사님에게 우리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