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동두천 11.6℃
  • 맑음강릉 15.5℃
  • 맑음서울 10.7℃
  • 맑음대전 13.6℃
  • 맑음대구 15.1℃
  • 맑음울산 15.6℃
  • 맑음광주 14.5℃
  • 맑음부산 14.5℃
  • 맑음고창 13.8℃
  • 구름많음제주 17.3℃
  • 맑음강화 11.9℃
  • 맑음보은 12.3℃
  • 맑음금산 12.8℃
  • 맑음강진군 15.6℃
  • 맑음경주시 14.1℃
  • 맑음거제 15.9℃
기상청 제공

사진이야기

[횟가마 사람들❷] “숨진 노동자 방바닥에 만 원짜리 지폐가 쫙…”

URL복사

"아침 햇빛 찬란한 장명산 기슭…” 1907년 개교한 교하초등학교 교가 첫 구절에 장명산이 나온다. 그리고 교하중학교 교가에도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장명산맥 기슭일세”라는 구절이 있다. 장명산은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갈라져 한강과 임진강에 이르는,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한북정맥의 줄기다. 그런 장명산이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일제가 단지 석회 생산만을 위해 장명산을 파헤쳤을까?



 횟가마골은 장명산을 중심으로 왼쪽이 ‘벌언리 횟가마골’ 오른쪽이 ‘능거리 횟가마골’로 불렸다. 이 지역 앞을 흐르는 강을 ‘횟강’이라고 했는데 ‘하지석리’와 교하다리 사이를 ‘교하강’, 하류 쪽은 ‘방천’‘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모두 ‘공릉천’으로 부르고 있지만 낚시꾼들은 대부분 ’횟강‘으로 기억한다.


 횟강에는 나룻배가 있었다. 이 나룻배는 1981년 곡릉천교가 놓이기 전까지 가루개(탄현 갈현리) 들녘에서 생산되는 벼와 농산물 등을 오도리와 하지석리로 실어날랐다.


 횟강에는 매년 사람들이 빠져 죽었다. 그럴 때면 시신을 찾기 위해 여러 곳에서 수영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시신을 찾지 못하면 어릴 때부터 횟강에서 물놀이를 했던 횟가마골 아이들이 불려갔다. 이 아이들은 시신이 어디에 있을 거라고 위치를 짚었는데 놀랄 정도로 적중했다. 아이들이 아예 물속에 들어가 시신을 찾아오기도 했다. 잠수부를 부른 장례식 관계자는 아이들에게 시신을 단번에 꺼내오지 말고 어느 한쪽에 놔뒀다가 가져오라고 했다. 그래야 죽은 사람이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유족들과 시신 찾는 값을 흥정하기 위해 머리를 쓴 것이었다.



 장명산 서쪽 봉우리에는 수백 년 된 향나무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 향나무에 산신제를 올렸는데, 향나무를 함부로 건들면 마을에 큰 재앙이 온다고 믿었다. 실제 조현묵 교하면장이 1997년 향나무 앞에 세운 경고문에는 “향나무를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되며 만약에 훼손할   경우 신의 저주와 주민들의 거대한 징벌이 있을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장명광산 노동자들도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향나무 봉우리를 오르곤 했다. 신세 한탄을 위해서다. 어떤 노동자는 혹독한 노동환경이 바뀌기를 두 손 모아 빌었고, 폐병에 걸린 노동자는 살려달라고 빌었다.


 어느 날 장명광산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피를 토하며 숨졌다. 평소에도 그는 피를 토하고는 했지만 그것이 산업재해인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린고비로 소문난 그의 단칸방 장판을 걷어내니 만 원짜리가 쫙 깔려 있었다. 곤달걀도 비싸다며 가게에서 거저 주는 김치 한조각으로 소주 한 병을 비우곤 했던 그는 그렇게 억척스럽게 번 돈을 장판 밑에 고스란히 두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이 돈을 어린 아들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넣었다. 아이의 엄마는 광산 생활에 지쳐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그러다가 훤칠한 키에 군복 차림의 남자가 광산에 들어왔다. 육군 중위로 전역했다는 그 남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얼굴이 허여멀겋게 생긴 미남형이었다. 그는 장명광산 사택 4호실을 배정받았다. 사택은 방 한 칸에 달랑 연탄 아궁이가 달려 있는 일자형 벽돌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김 중위라고 불렀다. 한동안 사택에서 혼자 끓여 먹고 지내던 김 중위에게 가족이 찾아왔다. 모두 다섯 식구였다. 아이들은 곱게 자란 얼굴이었다. 부인도 학교 선생님을 했다는 소문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연으로 온 식구가 광산에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건장했던 김 중위는 언제부터인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르기 시작했다.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는 것이 멈추지 않았고 결국 서울 성모병원에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진폐증 산업재해 싸움이 시작됐다.


 젊은 노동자 10여 명이 허리에 새끼줄을 연이어 매고 파주군청으로 향했다. 벌언리 고개를 넘을 때쯤 저 멀리서 경찰차 경광등이 번쩍였다. 그 경찰차가 노동자 시위 때문에 왔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경찰차가 행렬 앞에까지 왔을 때 뒤에 있던 노동자들이 새끼줄을 끊고 산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경찰차가 횟가마골 쪽으로 그냥 지나쳐 갔기 때문이다. 이렇게 첫 노동환경 개선 시위는 번쩍이는 경광등에 놀라 무산됐다.


 다음 호에 계속…




오늘의영상





여성 캐디 죽음, 회사는 책임 없나?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법원읍의 한 골프장에서 근무하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글을 회사 게시판 등 여러 곳에 남긴 후 극단적 선택을 한 고 배문희(27) 씨의 부모가 회사를 찾아가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 원인을 노노갈등으로 몰아가는 등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하다가 함께 동행한 파주여성민우회, 파주시민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이효숙, 최창호 파주시의원으로부터 회사가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부산에 살고 있는 고 배문희 씨 부모가 지난 10일 딸이 근무하던 골프장을 찾았다. 회사는 회의실로 안내했다. 고인이 유서 등 여러 곳에서 언급한 직장 상사 성 아무개 캡틴이 부모와 마주했다. 어머니 김옥자(53) 씨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딸을 살려내라고 울부짖었다. 아버지 배종훈(62) 씨도 캡틴에게 딸의 죽음에 아무런 관련이 없느냐며 다그쳤다. 캡틴은 관련이 없다고 대답했다. 파주여성민우회 고정희 사무국장은 “회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자꾸 노동자 간의 문제로 축소하고 있다. 회사가 언제 유족들한테 전화 한번 했는가? 부모님들이 오늘 이곳을 찾아오니까 유감을 표명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