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지도자 장준하 선생 서거 44주년 추모식이 오는 17일 탄현면 성동리 ‘장준하 공원’에서 열린다. 본래 묘소는 파주시 광탄면 ‘나사렛 천주교 공동묘지’에 있었으나 2012년 8월 파주시가 조성한 통일공원으로 옮겼다.
장준하 선생은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6개월 만에 탈출해 광복군 간부훈련을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배속됐다. 해방 후에는 잡지 ‘사상계’를 간행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여러 차례 투옥됐으며, 유신체제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사진은 현장사진연구소가 기록한 ‘장준한 선생 새긴돌’이다. 1989년 6월 30일 통일의 길목인 파주시 장곡리 검문소 앞에 세워졌으나 이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 새긴돌에는 장준하 선생의 약력을 이렇게 썼다.
장준하 선생은 단기 4251년(1918) 8월 27일(음력)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셨으며 젊은 날에는 독립군 대위로 일제와 싸우셨다. 8.15 해방 이후에는 한때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를 역임하시고 이승만 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와 싸우시다가 그 싸움의 결정적 고비인 단기 4308년(1975) 8월 17일 박정희로부터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원통하게도 암살당하셨다. 선생은 일 찌기 모든 통일은 좋은가, 모든 통일은 좋다고 하심으로써 분단은 제국주의의 침략이요. 따라서 분단침략과의 싸움 통일만이 민족사의 전진임을 설파하시었다. 통일운동 45년 6월 30일.
오늘도 밤이슬
이렇게 흔빡 젖은건
외세의 반역이 내리친 벽을
새도록 까부신 피눈물인줄
왜들 모르나
벗이여 나의 비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족해방 통일이라
이곳 땅밑에서도 이가갈리는
분단의 원흉은
그누구도 용서하지말라
하지만 통일은
딴데 있는게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마디마디박힌
분단의 독살 빼앗긴 자유
바로 그싸움의 현장에서
통일을 찾으라
그리하여 쓰러진 전사는
무덤이 아니라
저 들판을 일으키는
바람으로
잠들지 못하나니
벗이여 이불길 나는듯
봉우리마다 이어 붙여라
눈물도 한숨도
노여운 아우성으로
저 간악한 것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통일신바람
통일신바람으로 한꺼번에
한꺼번에 몰아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