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영문도 모른 채 먼길을 떠나야 했던 해외입양인들이 천승세의 소설 ‘황구의 비명’ 무대가 된 파주읍 연풍리 갈곡천 옹벽에 ‘엄마의 밥상보’ 벽화를 그리고, 주민들과 감자캐기 체험 등 한마당 잔치를 벌인 뒤 관광버스를 타고 임진강과 북한마을이 코앞에 보이는 탄현면 대동리 다온숲 풀빛정원에 도착했다.
다온숲은 입양인들한테 익숙한 곳이다. 다온숲은 그동안 입양인들에게 김치담그기, 감자캐기, 식사 제공 등 그동안 여러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날도 다온숲 풀빛정원 건물에는 입양 당시의 얼굴과 현재의 얼굴이 새겨진 대형 펼침막이 내걸렸다. 입양인들은 그 펼침막을 보며 환호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있는 위치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다온숲 주방이 저녁식사 준비에 바쁘다. 특급 호텔 출신의 세프가 새우파스타, 베이컨 크림 파스타, 불고기 파니니, 다온숲 플래터 등 요리를 준비하는 사이 입양인들은 친정집 마당 같은 넓고 푸른 잔디밭을 걷거나 뛰었다. ‘내가 돌아온 나라 한국’을 주최한 미앤코리아 스텝이 북쪽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임진강 그 건너가 바로 북한땅’이라고 소개하자 입양인 모두 깜짝 놀라며 약속이나 한 듯 핸드폰을 북쪽으로 돌렸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드는 임진강에 저녁노을이 붉게 드리웠다. 한 입양인은 잔디밭 통나무 의자에 앉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노을만 응시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한 그 세월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지만 노을빛에 물든 평온한 얼굴 표정에서 엄마의 그리움이 묻어난다.
다온숲 세프가 밖으로 나와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됐다며 입양인들을 부른다. 마치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 같다. 통역 스탭이 벙커 를 향해 큰소리로 전달한다. 잔디밭에 없던 입양인들이 군사용 지하벙커에서 튀어나온다. 다온숲 잔디밭 지하에는 군사용 벙커가 있다. 분단지역의 흔한 풍경이다. 이 벙커를 중앙선관위 전 사무총장 김대년 작가가 그림 수백여 점을 전시한 ‘김대년 벙커 갤러리’로 개관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입양인들이 파주 방문 소감을 나누었다. 용주골 주민들이 선물한 ‘밥상보’가 엄마를 닮았다며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감자밭 흙냄새에 엄마를 떠올리며 울음을 터뜨렸던 일, 작은 화물차 적재함에 앉아 덜컹거리며 마을을 내달렸던 일, 잔치국수와 매운 겉절이 김치를 맛보며 주민들과 함께 웃었던 일, 찹쌀 떡메치기로 인절미 돌떡을 만들어 입에 넣어줬던 고마움 등을 가슴 속 깊이 안고 떠난다며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 안거나 손을 맞잡으며 다시 만나길 기원하는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