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시장이 여기 대추벌(성매매집결지)을 없앤다고 전국에 소문을 내는 바람에 아이들은 물론 주민들이 연풍리에서 살 수 없다고 합니다. 특히 결혼을 한 아들 며느리가 시댁에 오는 게 너무 민망하다고 합니다. 집결지 단속을 하려면 그 안에 들어가서 해야지 입구 골목마다 경광등과 남부끄러운 문구의 현수막을 달아놓으면 우리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연풍리 주민들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입니다.” 지난 11일 ‘연풍지역활성화대책위’ 발족식에서 나온 말이다. 주민들은 파주시의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단속 방식을 비판했다. 그리고 용주골이 성매매지역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과 대책을 호소했다.
대추벌과 용주골은 과연 우리 현대사에서 어떤 역사적 의미가 있을까. 한국 사람들에게 알려진 용주골은 미군 기지촌이 들어섰던 연풍1리이고,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대추벌은 연풍2리이다. 용주골은 농업 중심의 집성촌에서 전후 미군기지에 의존하는 성매매 중심의 상업공간으로 변모했으나 1970년대 초반 미군기지의 이전과 함께 지속적인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전 용주골은 성가, 조가, 박가, 윤가 등 네 개의 성이 집성촌을 이루어 모여 살던 농업 중심의 작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이 지역에 크고 작은 기지 다섯 개가 배치되었다. 특히 1953년 파주읍에 미군 제2사단이, 1956년 미군 휴양시설 ‘알씨원(Recreation Center 1)’이 세워지면서 마을이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파주군의 외국인 관광업소 74곳 중 20개가 용주골에 위치했다.
한국인 대상 성매매촌으로 알려진 대추벌은 갈곡천 남단의 연풍2리이다. 현재 김경일 시장이 폐쇄를 몰아붙이고 있는 성매매집결지이다. 미군은 용주골을 성매매촌으로, 한국 사람들은 대추벌을 집창촌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북단의 안용주골에는 흑인들만 출입하는 클럽이 들어서고 집단촌으로 불렸는데, 당시 미국 내의 흑백 갈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이와 같이 인종화된 공간은 군사경찰(Military Police)이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집단촌으로 들어가는 백인들을 통제했다. 이러한 흑백 갈등은 위안부(양색시)들의 계급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흑인 미군 병사를 상대하는 위안부는 ‘흑인 여자’라고 불렸다. 미군과 한국 남성들 사이에도 흑백 갈등과 유사한 경계가 지어졌다. 기지촌의 중심을 차지했던 미군 클럽이 한국인 출입금지 공간이었던 반면 용주골 남쪽, 즉 한국인을 상대하는 성매매업소가 자리했던 대추벌은 미군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다. 따라서 현재의 대추벌 성매매집결지는 미군의 안정된 욕정을 위해 한국 정부가 형성했다는 게 기지촌을 연구하는 학계와 전문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미군 위안부의 성매매를 중심으로 한 유흥업은 기지촌 경제의 축이었다. 특히 미군 클럽은 기지촌에서 돈이 가장 많이 돌았던 곳으로 당시 국가 외화벌이의 핵심 공간이었다. 클럽에서 팔려나간 버드와이저 등의 수입 맥주와 ‘관광 맥주’ 판매는 국가사업으로서 한 병당 2달러씩 세금이 부과됐다.
용주골은 1980년대부터 위안부들이 브로커를 통해 마을을 벗어나 미군 훈련 장소로 출장을 나가는 일이 잦아지다가 1990년대에는 상권이 완전히 쇠퇴했다. 한편 용주골 대신 갈곡천 너머 대추벌이라고 불렸던 연풍2리의 경제 규모가 커지는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결국 한국의 텍사스라는 용주골이 가졌던 지역적 정체성은 한국 사람들이 찾는 대표적 집창촌으로 탈바꿈했다.
미군기지와 위안부에 의존하던 용주골 경제는 다리 건너 대추벌에서 일어나는 한국 사람들의 성매매와 성노동자 중심으로 재편됐다. 여성들을 구매하는 주체가 미군에서 한국인으로 바뀌었을 뿐 용주골 주민들의 생계를 유지해주는 것은 여전히 성매매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계속됐다.
파주시 발전방안과 성매매집결지에 대한 심포지엄이 2005년 경기연구원 주최로 열렸다. 이 심포지엄에서 용주골 재개발 논의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군의 철수로 성매매집결지, 이른바 용주골에 대한 장래 발전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용주골은 주한미군공여지 관련 개발 대상지에 포함되었으나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2013년에는 도시환경정비 예정 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을 시도했으나 결국 사업성 미흡 평가를 받았다.
2015년 8월 이재홍 전 파주시장은 지역적 역사성과 상징성을 문화적 가치로 이끌어 내기 위한 프로젝트 ‘용주골 파란을 꿈꾸다’를 서울대 미술대학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는 파주읍 연풍리 지역의 무형적 가치를 서울대 미술대학의 풍부한 문화 예술적 감각과 파주시가 품고 있는 미래지향적인 현실 감각을 접목시켜 파주만의 지역적 특성을 지향적 유형적 가치로 재탄생시키고자 한 사업이었다.
현장사진연구소와 2년간 기지촌을 공동 연구해 온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2019년 7월 대한민국 최대 미군기지였던 파주읍 ‘용주골 이야기’를 외국 학술지 심사를 거쳐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등 영미권에서 출간했다. ‘용주골 이야기’는 이제까지의 기지촌 연구가 여성에게만 초점을 둔 반면 기지촌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본격적인 연구가 없어 연풍리의 공간적 시각을 중심으로 지역경제 생태계, 지역의 통치체제, 한미관계, 안보와 기지촌, 재개발 문제 등을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한국의 미군 기지촌 콘퍼런스를 열어 최종환 전 시장을 초청해 반환된 미군 공여지의 효율적 활용방안과 엄마 품 동산 확대 조성 계획을 들었다.
최종환 전 시장은 도시재생 개념을 중심으로 용주골의 발전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김경일 시장은 용주골의 도시재생을 위해 입주한 작가공방의 지원을 2023년 12월로 중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6월 연풍경원의 EBS 캐릭터까지 모두 철거하는 등 사실상 연풍리 도시재생 지원을 중단했다.
이처럼 한국전쟁 시기 국가안보를 위해 희생한 파주읍 연풍지역 등 기지촌의 발전을 고민한 전임 자치단체장들과 달리 김경일 파주시장은 이미 도시재생에 투자한 연풍경원 캐릭터를 지역 주민들과 아무런 협의도 없이 철거하는가 하면 수십여 년 성산업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대화와 타협으로 풀기보다는 공권력을 앞세운 불통행정으로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밀어붙이고 있다.
김경일 시장은 용주골과 대추벌의 역사적 경계는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