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 여성들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살려달라고 했다. 그러면 그 은혜는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했다. 깜짝 놀란 정치인들이 손사래를 치며 만류해 보지만 이들은 도와달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왜 무릎을 꿇었을까?
김경일 파주시장은 2023년 1호 사업으로 파주읍 연풍리에 있는 성매매집결지 해체를 선언했다. 김 시장은 대한민국 최대 미군 기지촌이었던 용주골 옛 문회극장에서 선포식을 갖고 결의를 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시장은 없어진 줄 알았던 성매매집결지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경기도의원을 4년 동안이나 한 김 시장의 이 말이 더 깜짝 놀랄 만한 일이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1961년 11월 9일 법률 제771호로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제정하여 성매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정부는 1962년 내무부, 법무부, 보건사회부의 공동지침으로 성매매영업이 가능한 104개 ‘특정지역’을 설치해 관리했다. ‘특정지역’에는 용산역, 영등포역, 서울역 등 46개 집결지역과 파주를 비롯 이태원, 동두천, 의정부 등 32개 기지촌이 포함됐다.
정부는 윤락지역을 일반인 거주지역으로부터 격리시켜 시민들의 풍속과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을 희석시키고, 윤락녀들의 집단화를 유도함으로써 이들 스스로가 포주로부터의 착취를 자발적으로 방어하며 효율적인 성병관리가 가능함을 ‘특정지역’ 설치 목적으로 했다.
1987년 보건사회부에서 발간한 ‘부녀행정 40년사’에서는 당시 정부 정책에 대해 “미군정 당시 부녀자의 인신매매 또는 매음행위를 불법화시켰으며 매개자의 처벌을 규정하였으나 그 운용에 있어서 선도책이 없는 단속만으로 사실상 묵인상태에 있었으므로 창녀를 재활시켜 그간 사회에 적지 않은 물의를 가져왔다.”라고 했다.
한국전쟁 이후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1957년 7월 서울로 이전함에 따라 미군부대 장병들의 외출 외박이 자유로워지면서 용주골에 대규모 기지촌이 형성됐다. 용주골에는 흑인과 백인 출입지역이 있었고, 갈곡천 건너 대추벌에 한국인 전용 성매매집결지가 자리잡았다. 이곳에 성매매여성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윤락행위방지법의 단속 면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형성된 곳이 바로 김경일 파주시장이 해체를 선언한 연풍리 성매매집결지이다. 그러니까 사실상 성매매를 허가한 정부가 포주인 셈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이라는 혼란기에 어쩔 수 없이 성매매 단속을 면제한 정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집결지 해체를 선포하려면 먼저 ‘특정지역’으로 지정했던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국가가 집결지 형성의 책임에 대해 사과를 하든가, 자치단체장인 김경일 시장이 우리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공권력을 앞세워 70년 역사의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밀어붙이기보다 성찰과 치유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매매집결지 종사자들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나가야 한다. 연풍리 성매매집결지 종사자들의 무릎꿇은 호소가 우리 모두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