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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기획특집] “31년 전 파주에 통일시 만들자던 파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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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파주신문’을 ‘황 선생 신문’이라고도 불렀다. 파주신문 지면에 자신의 이름 한 줄 올리지 못했음에도 파주신문이 황 선생 신문으로 불린 까닭은 중앙언론이 지역의 문화와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있는 시대적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지인들에게 지역신문 창간의 절절함을 호소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황 선생의 이러한 열정에 파주학생회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파주학생회에서 함께 활동을 한 금촌건설 박호식 대표의 보이지 않는 헌신은 파주신문 창간에 숨은 공로였다. 파주신문이 창간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뒤 가족도 없이 쓸쓸한 죽음으로 나타난 황원택 선생 시신이 벽제 화장터로 가기 직전 탄현 동화경모공원에 모신 것도 박호식 대표였다.


 파주신문 구성원은 대부분 황원택 선생의 제자이거나 지인이었다. 첫 공개채용은 1990년 1월 31일자 창간 준비호에 공고됐다. 응시 자격은 4년제 정규대학 졸업자로 1989년 및 1990년 졸업자에 한하며, 자필 이력서와 최종학교 전학년 성적증명서, 200자 원고지 5매 이상의 자기소개서 등을 제출해야 했다. 파주신문의 공채 1호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덕겸 기자였다.



 1990년 2월 8일 목요일 파주신문 창간호가 나왔다. 약속대로 5만부를 찍었다. 신문 제호는 서울대 이응백 교수가 썼다. 황원택 선생 제자 전정숙 씨가 발행인을, 경향신문 노영대 기자가 편집국장을, 한국일보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원희석 씨가 취재부장을 맡았다.


 창간호 1면 헤드라인은 ‘파주시에 통일시를 유치하자’였다. 내용을 살펴보면, 파주 출신 대학졸업생들의 모임인 ‘파주학생회 동문회’가 문산에서 회합을 갖고 파주에 통일시를 유치하는 데 앞장설 것과 각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주인이 모두 참여하는 ‘통일시 유치와 건설을 위한 파주시 모임’ 발족을 결의하는 것이었다. 파주신문은 일부러 외지인을 배격한 것은 아니지만 창간의 주체가 파주인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밝혔다.


 파주에서 지역신문 창간이 늘어나면서 파주신문 운영도 어려워졌다. 급기야 황원택 선생이 교직을 그만두고 신문 사업에 직접 뛰어들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받은 퇴직금은 금방 동났다. 부채가 늘어나면서 내부 갈등이 심해지고 파주신문 후원회도 초심과 달리 정치적 색채가 짙은 방향으로 변질됐다. 결국 황 선생의 오른팔이었던 최병록 총무부장의 집이 은행 담보로 넘어가면서 파주신문의 경영은 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황원택 선생이 어디론가 떠나고 최병록 총무부장이 파주신문의 명맥을 가까스로 유지하던 중 파주의 일부 지역신문들이 통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통합신문 제호는 역사성이 있는 ‘파주신문’으로 결정됐다. 이른바 ‘주간 파주신문’이었다.


 파주신문은 파주시가 파주읍 일원에 ‘페라리 월드’ 조성을 추진하던 ‘파주 프로젝트’ 타당성 여부에 집중했다. 결국 편집회의에서 ‘파주 프로젝트’가 실체는 없고 소리만 요란한 사업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관련 보도가 이어졌다. 이에 이인재 파주시장을 비롯 공무원 13명이 파주신문사와 기자들을 허위사실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무더기 고소했다.


 파주신문 고소에 참여했던 공무원 13명 중 현재 현직에 남아 있는 사람은 자치행정국장, 문화교육국장, 평화기반국장, 의회사무국장, 보육청소년과장 등 총 5명이다. 이들은 최근 국장과 과장으로 모두 승진했다.


 다음 호에 계속…


아래는 1990년 2월 8일 창간된 파주신문 창간사다.


창간에 부쳐


 우리는 임진강의 넉넉함과 감악산의 우람함, 그리고 파주 벌판의 너그러움을 끌어안고 오늘 파주신문을 창간한다. 파주신문은 조상의 숨결이 담긴 공기와 조상의 얼이 묻힌 흙과 조상의 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 쌓이고 쌓여 지금 파주에 새로운 빛을 일으키고자 오늘, 파주신문을 창간한다.


 뒤덮힌 눈과 두꺼운 얼음들은 긴 겨울을 참고 견디어 낸 후 비로소 신비롭게 솟아오르는 생명의 물이 된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며 오늘 파주신문을 창간한다. 20세기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사라지는 1천9백90년. 21세기의 힘찬 전진의 발걸음이 북소리처럼 울려오는 1천9백90년. 파주신문은 대전환과 대변혁의 중간지점에 서서 조심스럽게 첫 발을 내딛는다.


 역사는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다. 오늘을 시점으로 본 세계의 역사는, 넓게 보면 세계와 국가, 좁게 보면 가정과 개인을 지배하던 기존의 가치체제가 변화, 개량돼 가고 있으며, 세계질서의 핵이 되는 인간정신은 갈등과 혼란에 빠져 있다. 이념을 축으로 좌우로 갈라섰던 인간들이 공존의 문을 통해 화해의 결합을 진행시키고 있다.


 개방의 물결은 동유럽을 거쳐 중국과 소련에 와서 개혁으로 이어져, 지구촌은 이제 자유화, 민주화, 인간화의 새로운 미래가 열린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이와 같은 엄청난 변화의 시기를 배경으로 오늘 파주신문은 태어났다.


 우리는 황금만능주의와 퇴폐와 마약과 범죄와 심각한 이기주의와 도덕성의 상실에 기인한 서구문명의 퇴조를 지켜보고 있다. 또한 21세기 인류문명의 새로운 구심점은 아시아 태평양권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예감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위에 오랫동안 군림했던 서구문명은 지는 달과 같고, 안으로 물같이 흐르던 동양문명은 이제 떠오르는 해처럼 우리들의 역사를 밝혀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념에 기인한 갈등의 역사가 끊이질 않았고, 그로 인한 분단의 아픔 또한 지금껏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주변의 변화들은 이제 우리 민족도 하나로 통일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밝게 해준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우리는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끼면서 파주신문의 나아갈 길을 밝혀 둔다.

 

 파주신문은 진실을 추구하는 사회건설에 기여하겠다. 잃어버린 진실과 숨어버린 양심은 일깨워 주고, 떳떳한 윤리는 속속들이 밝혀내어 반목과 불신을 제거하겠다. 갈등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겐 용기와 지혜를 주며 정직하게 역사를 기록하는 자가 되기 위해 냉철한 이성으로 옳음을 따르는 진실한 신문이 되겠다.


 파주신문은 파주에 사람이 차고 넘치는 풍토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 사람은 누구나 평화로운 환경 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소망을 위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 아름다운 마음을 같이 나누며,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풍토조성에 앞장서는 것은 언론이 짊어져야 할 당연한 책무이다.


 따라서 파주신문은 어려운 이웃을 소개하여 서로 돕고 사는 미풍을 일으키고, 소외된 이웃은 공동의 광장으로 불러들여 우리 향토 구석구석에 푸성귀 같이 풋풋한 사람이 흘러넘치는 고장을 건설하기에 주력하겠다.


 파주신문은 인간 존중의 사회실현을 위해 기여하겠다. 의롭게 사는 자의 편에 설 것이며 어렵지만 보람 있게 살고자 하는 저소득층의 권익신장을 위해 날카로운 펜 끝에, 더 날카로운 눈을 달고, 그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유할 수 있도록 황토빛 얼굴들을 찾아 지쳐 쓰러질 때까지 파주 벌판을 누비겠다.


 파주신문은 바래져가는 향토문화를 발굴 보존 계승시키는 데 주력하겠다. 높은 학문과 깊은 사상, 고고한 인품과 덕망으로 파주의 정신을 민족의 정신으로까지 승화시켰던 명현지사들의 뜻을 현재에 맞게 재창조하여, 높은 수준의 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향으로 우리 고장이 자리 잡도록 다각적인 연구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파주신문은 청년지도자의 발굴, 육성에 일익을 담당하겠다. 청년은 향토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가는 힘의 원동력이다. 청년의 청동빛 굵은 팔뚝에 파주의 미래는 달려있다. 젊은 신문, 젊은 피가 도는 신문, 이것이 또한 미래의 파주신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면을 활짝 열어놓고 건전한 사고를 가진 청년이, 향토의 번영과 21세기의 주역, 통일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적극 소개하겠다.


 파주신문은 고향을 잃은 이들에게는 고향을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고향을 떠나있는 이들에게는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데 노력하겠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파주 향우들의 심부름꾼이 될 것이며 파주인들끼리 마음과 마음을 맞잡을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


 파주신문은 정치적으로는 엄중 중립을 지키며 국가의 이익에 배치되는 일에는 가담치 않을 것이며 어떤 종교로부터도 자유로울 것이다. 파주신문의 궁극적인 최대 목표는 인간이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건설을 위함이며, 살기 좋은 향토 건설을 위해 온 파주인이 화합하고 연대하고 사랑하는 정신을 불어넣는 데 있다.


 파주신문은 통일의 최전진 기지에서 오늘 태어났다. 통일이 되면 제일 먼저 초록빛 잉크로 호외를 찍어, 그 소식을 전국에 전할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 파주신문은 도도한 역사의 한 여백에서 첫 발자국을 당당히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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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피해자가 엄벌 탄원… 죄질 나빠 징역 2년 선고” 파주시청 육상부 김 아무개 전 코치가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엄벌에 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고, 죄질도 나빠 원심 형량이 무겁지 않다며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서울고등법원 제8형사부(부장판사 배형원)는 14일 오후 2시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검찰과 피고인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준강간미수 사건에 대해 모두 기각했다. 이에 따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이 지난해 10월 13일 판결한 징역 2년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복지시설 등의 5년간 취업제한, 신상공개 등이 그대로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날 “자신이 관리하는 선수를 강간하려고 한 행위는 죄질이 좋지 않은 데다 피해자가 엄벌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처벌을 원하고 있고,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가 상당한 성적수치심과 정신적 고통을 느낀 것으로 보여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거나 무겁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김 아무개 전 코치는 지난해 10월 고양지원에서 법정구속된 뒤 감형 선처를 호소하는 반성문을 항소심 재판부에 18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가 엄벌을 요구하고 있다며 반성문을 감형의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