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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취재일지] 여성 캐디 자살과 그 언저리 사람들



파주바른신문사 전화벨이 울린다. 한 여성의 떨리는 목소리는 사태의 무게를 암시한다. “제보가 있어서요.” 신문사는 제보 접수 절차를 안내한다. 그러나 그 여성은 그런 절차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조금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그럼 그만두세요.”라며 전화를 끊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여성은 파주지역 언론사 곳곳에 제보 전화를 했으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거나 연결이 돼 제보 내용을 설명하면 잘 알았다고만 할 뿐 취재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며칠 후 그 여성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대학재단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여동생이 관리자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그 내용을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취재진은 법원읍 삼방리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캐디의 친언니가 골프장 입구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골프장 측은 영업방해라며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친언니는 파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부모님도 모두 부산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취재진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우선 파주시의원 중 골프장에서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의원에게 전화했다. 연결이 되지 않았다. 파주지역의 한 노동단체에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노동단체는 노무사와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노동단체는 그게 끝이었다. 

 그래도 정치인이 나서는 게 필요할 것 같았다. 2020년 10월 1일 파주시의회 목진혁 운영위원장에게 “법원읍 골프장 캐디 자살 사건과 관련 정치권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힘 파주시의원들도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진혁 운영위원장께서 파주시의회 차원의 성명서를 낼 의향이 있는지, 아니면 청년 시의원인 목진혁 의원 혼자라도 낼 생각이 있는지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목진혁 운영위원장은 청년의원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취재진이 성명서를 써서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국민의 힘 소속 파주시의원들이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부 시의원들은 유가족과 함께 골프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특히 파주여성민우회의 강력한 항의는 이 사건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 

 파주바른신문은 여성 캐디의 극단적 선택이 직장 내 괴롭힘이 그 원인이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동료 캐디들의 증언을 인터뷰하는 등 7차례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고용노동부의 판단이 나왔다. 여성 캐디의 자살 원인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방송사 등 중앙 언론의 보도가 쏟아졌다. KBS 시사프로그램 ‘시사직격’은 ‘지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라는 제하의 방영을 통해 특수고용직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보도했다. 

 여성 캐디의 유가족이 26일 괴롭힘의 당사자로 지목된 캐디 관리자 성 아무개 캡틴을 경남 양산경찰서에 고소하면서 사건을 파주경찰서로 이첩해줄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은 또 관리자와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도 제기할 방침이다. 

 취재진은 30여 년 전, 현재 법원읍 삼방리에 들어선 골프장 반대 취재를 꽤 오랜 기간 했었다. 당시 파주학생회와 삼방리 청년회 등 농학연대 결합은 파주지역사회의 문제를 공동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행동했다는 점에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반대했던 그 골프장에서 스물일곱 청춘이 직장 상사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낯선 모텔방 한구석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세상을 떠났다. 

 너무 힘들다는 호소의 글을 회사 직원용 카페에 올렸는데도 상담은커녕 삭제하기 바빴던 골프장과 도움의 손길을 외면한 노동단체, 그리고 죽음마저도 정치적 셈법으로 계산하기 바쁜 일부 정치권의 모습을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 중심의 언저리를 맴도는 그런 사람들의 속성을 알 수 있었던 취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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