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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진이야기] 곧 사라지는 리비교... 미래유산 뒷북 치는 파주시


1953년 건설된 리비교 상판이 철거되고 교각에 구멍이 뚫린다. 카메라는 겨우내 그 현장을 목도했다. 가슴이 임진강 칼바람만큼이나 시리다.

 

 너댓 살 때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리비교를 수없이 건넜던 아련한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집 사랑방에 미군 병사와 함께 세 들어 살던 옥난이 누나가 저녁 무렵 립스틱 짙게 바른 얼굴로 리비교 검문소 앞에 서서 미군을 기다리던 처량함 때문만도 아니다.

 

 지난 3파주 미래유산 발굴과 관리방안 수립 용역 보고회와 전문가 토론회가 있었다. 파주시의회 안소희, 박은주 의원과 서울연구원 민현석 연구위원, 배재대학교 건축학부 김종헌 교수,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 관련 공무원 등이 참석했다.

 

 토론자 대부분은 리비교를 근현대사 미래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했다, 미래유산 담당 공무원도 리비교를 미래유산 1호로 꼽았다. 파주시의회는 리비교 철거 예산을 지난해 의결했다. 유일하게 최창호 의원만 리비교의 보존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일부 의원들은 정치적 셈법에 따라 뒤끝을 흐렸다. 특히 시민단체 출신 시의원의 모습이 그러했다.

 

 파주시는 리비교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겠다고 하면서도 교각은 철거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 역사적 보존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니까 상판과 교각을 들어내 새로 조성되는 리비교 광장에 세우는 것, 그것 역시 보존의 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까닭은 한국전쟁 시기 임진강에 만들어진 11개의 부교, 가교, 다리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리비교를 철거하면서도 입으로는 미래유산 1호로 꼽는 뒷북 행정 때문이다. 정치인과 공무원은 리비교의 역사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보존하고 싶어도 다리를 빨리 완공해달라는 지역주민들의 요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책임을 주민들에게 전가한다.

 

 오히려 바쁜 삶속에서 문화적 가치를 경험하지 못한 주민들에게 근현대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제대로 알리고 이해시키는 것은 정치인과 공무원의 몫이 아닐까? 그럼에도 정치적 셈법에 따라 미래유산의 가치를 애써 나누고 훼손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인과 행정당국의 처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높다.

 

 리비교는 높이 13.5m에 폭 6.6m의 교각 8개로 건설됐다. 파주시는 각각의 교각을 여섯 토막으로 자른 다음 크레인 작업용 구멍을 16개 뚫어 철거한다는 방침이다. 구멍의 크기는 직경 150mm이다. 그러니까 16개의 구멍을 모두 합치면 한 교각에 240크기 만큼의 뚫린 흔적이 포탄 맞은 것처럼 곳곳에 남게 된다. 그야말로 누더기 교각이 되는데 파주시는 이 교각을 옛 리비교를 상징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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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남편 추억 깃든 ‘리비교’와 함께 떠난 미군위안부” 사진은 미군 기지촌 여성이 1960년대 중반 임진강 리비교를 배경으로 찍은 모습이다. 1936년생인 이 사진 속 여성은 얼마 전 세상을 마감했다. 마을에서 깜둥이 엄마로 불린 이 할머니는 스물여섯 살에 미군클럽과 유흥주점이 즐비한 파평면 장마루촌에 들어왔다. 파평면 장파리는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 촬영 장소와 가수 조용필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는 매일 술 취한 미군이 득실대는 다방과 클럽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서쪽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임진강 리비교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리비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1953년 7월 4일 건설했다. 임진강 너머 민간인통제구역 안에는 15개의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저녁이면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미제물건을 어깨에 들쳐 메고 리비교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양키물건을 사려는 사람들과 미군병사를 꼬셔 술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포주, 클럽 여성들이 뒤섞여 리비교는 매일 전쟁터 같았다. 할머니도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된 흑인 미군병사 ‘존슨’을 리비교 앞에서 만났다. 둘은 월셋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계약결혼이다. 그리고 196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