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파평면 장파리 현대사를 얘기하다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가수 조용필이다. 조용필이 고등학교 때 장파리로 가출해 미군 클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그 클럽은 파주시가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에 나오는 ‘라스트 찬스’이다. ‘라스트 찬스’ 이름의 진실은 지난 호에서 언급했으므로 생략한다.
파주바른신문은 2021년 5월 한겨레신문과 함께 조용필 씨가 파평면 장파리 미군 클럽에서 노래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조용필 씨 매니저를 접촉했다. 그런데 매니저는 공식적으로 얘기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겨레도 흑역사로 치부될 수 있는 과거를 뚜렷한 사실관계 없이 지역이나 특정 목적 홍보에 이용하는 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런 얘기는 조용필 씨와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이 술자리 정도에서나 나눌 얘기라고 덧붙였다.
파주시가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는 가수 조용필 씨가 ‘라스트 찬스’에서 노래를 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마을이야기에 왜 술집과 유명인들을 앞세우는지 알 수 없다. 조용필 씨가 장파리에서 노래를 했든 안 했든 그것이 왜 마을이야기의 중심에 있어야 하는 걸까?
한국전쟁 이후 미군의 본격적인 한반도 주둔계획에 따라 파주, 문산, 동두천 등 휴전선 근방은 물론이고 대구, 군산, 김제 등 전국에 미군 기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기지촌 주변에 미군들이 유흥을 즐기는 클럽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많은 연예인과 지망생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미국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의 슈퍼스타가 포함된 미군위문협회(USO) 공연단을 한국에 파견하기도 했다.
미8군 쇼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에게 꿈의 무대였다. 연예지망생들이 몰려들어 오디션 경쟁이 치열했다. 이 때문에 각 쇼(Show) 단체는 미군 기지촌에 형성된 클럽에 지망생들을 보내 오디션 심사를 위한 공연을 주선했다. 장파리에는 규모가 큰 블루문홀과 디엠지홀이 있었고, 클럽과 바가 있었다. 한국 정부는 ‘홀’과 ‘클럽’의 업종을 구분했다. ‘홀’은 밴드 등 라이브가 가능했고, 클럽은 레코드판 등 오디오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장파리 미군 기지촌에 몰린 음악인들이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은 ‘홀’이었다. 블루문홀에는 ‘하우스밴드’가 있었다. ‘하우스밴드’는 업소에 고용된 전속 밴드였다. 조용필 씨 등은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노래를 하는 ‘오픈밴드’였다. 그런 까닭에 조용필 씨를 비롯 많은 음악인들이 장파리 뿐만 아니라 파주읍 용주골의 세븐업클럽을 비롯해 동두천, 의정부, 평택 등 전국을 순회하며 재즈, 컨트리, 로큰롤 등으로 노래 실력을 쌓았다. 그렇다면 그 지역마다 모두 조용필의 발자취를 새겨야 하는 걸까?
그동안 파주의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장파리의 과거를 얘기할 때 조용필과 라스트 찬스를 하나로 묶어내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필 거리도 계획됐다.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도 등장했다. 반면 미국의 하위문화인 기지촌 군사문화 밖에서 아이들을 지켜내며 열심히 살아온 주민생활 언급에는 인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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