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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아픈 역사일수록 더 깊게 호흡해야…” 성병관리소 보존 촉구

미군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들과 경기지역 여성 시민단체 등은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가 성병 감염을 이유로 미군 위안부를 강제 수용했던 성병관리소의 건물 보존을 촉구했다.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은 7일 오전 동두천 소요산 기슭에 잇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동두천시가 옛 성병관리소가 있는 땅 2필지를 소유주인 신흥재단으로부터 총 29억 원에 매입해 이곳 일대를 ‘소요산 관광지 확대 개발사업’과 연계해 개발할 예정이다.”라며 동두천시에 건물 보존을 촉구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정부가 미군 위안부를 강제 수용했던 곳으로 1970년대 초반에 세워져 20여 년 넘게 운영됐다. 당시 미군 위안부는 성병 검진에서 성병 보균자로 진단되거나 정부에 등록하지 않고 미군을 상대하다 적발되면 이곳에 강제로 수용됐다. 
 
 보건사회부는 1960년 9월 24일 미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파주 10개소, 양주 5개소에 성병진료소를 설치해 외국인 상대 여성을 일 주일에 두 번씩 검진하는 성병관리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1962년 9월 7일에는 경기도청에서 한미친선위원회가 열렸는데, 이 회의에는 경기도를 대표해 박창원 경기지사가, 미군 측에서는 미1군단장 ‘휴·P·헤리스’ 중장과 참모 등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미군 위안부에 대한 성병관리 강화대책으로 성병 검진을 받은 사람에 한하여 위안부 행위를 허용하고, 성병진료소 감독원(의사) 10명을 증원 배치하는 한편 경기도 보건사회국은 성병진료소의 증설 필요성에 따라 최소 10~20개소의 성병진료소를 증설하기로 했다. 당시 경기도에는 46개소의 성병진료소가 있었다. 정부는 그동안 성병검진 업무를 보건소 관할 진료소가 아닌 적성의원, 평화의원, 중앙의원 등 민간 병·의원에 위탁 운영했었다.
 
 파주는 1963년 천현면(법원읍) 초리골 입구 왼쪽 산기슭에 ‘파주군 제1성병관리소’(75평)를 163만 원을 들여 신축했다. 그런데 용주골에 위안부 여성들이 급격히 늘어나자 주내면(파주읍) 연풍리 대추벌에 ‘파주군 제2성병관리소’를 신설하고, 용주골에 ‘주내지구 성병진료소’와  임진면(문산읍) 선유리에 ‘문산지구 성병진료소’를 증설했다. 그리고 1972년에는 법원읍 초리골 제1성병진료소가 금촌으로 이전해 성병검진에 걸린 낙검자를 강제 수용했다. 현재 평생학습관(구 여성회관) 자리가 성병관리소였다.



 현재 김경일 파주시장이 행정력을 총동원해 해체를 추진하고 있는 연풍리 성매매집결지 여성들도 집결지 바로 옆에 세워진 ‘파주군 제2성병관리소’에 강제 수용돼 성병관리를 받아야 했다. 이곳 성매매집결지는 1961년 제정된 ‘윤락행위방지법’에 따른 단속 면제 지역으로 분류해 사실상 성매매집결지 형성 주체가 정부였다는 지적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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