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동자로 살아온 지 어느덧 10년이 됐네요. 그동안 이 악물고 벌어 전남편 빚을 이제야 다 갚았어요.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작은 집과 먹고 살 수 있는 가게라도 마련하려면 돈을 또 모아야 하는데 파주시가 성매매집결지를 없애겠다고 난리치는 바람에 여기저기 알바(출장 성매매)를 뛰고 있어요. 어떻게 하겠어요. 가족과 살아가려면 뭔짓을 해서라도 버텨야지요.” 대추벌 성매매집결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싱글맘 이랑(가명) 씨가 운정신도시로 일을 나가기 위해 얼굴 화장을 고치며 한 말이다.

성노동자 이랑 씨는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스물다섯에 결혼했다. 물감 사업을 한 남편은 돈 한푼 가져오지 않았다. 이랑 씨는 아이를 낳고 학교 앞에서 떡볶이집을 했다. 쾌활한 성격의 이랑 씨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바람에 남편 사업자금도 쉽게 빌릴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 사업자금으로 쓰이는 줄 알았던 돈이 남편의 사생활에 모두 탕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공항에서 민속공예품 판매를 하던 이랑 씨의 소득은 매달 이자와 원금을 갚는 데 나갔고, 아이들의 유치원비는 물론 옷 한벌 제대로 사 입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얘기하면 되레 화를 내며 집안의 살림살이를 때려부수기 일쑤였다. 그렇게 집안을 난장판 만들 때면 이랑 씨는 아빠의 난폭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아이들을 방으로 들어가게 한 뒤 자신도 화장실로 피신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화장실까지 쫓아들어와 이랑 씨의 목에 흉기를 들이댔다. 직장에서 친절사원 표창을 받기도 했던 이랑 씨는 결국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법원에 이혼소송을 냈고,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가져왔다.

이랑 씨는 제법 규모가 있는 호텔에서 프런트 일을 3년 동안 했다. 호텔 근무는 죽고 싶을 정도로 만만치 않았다. 당시 술집에서 2차를 나온 여성들이 투숙객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고, 그 여성들과 짬짬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유흥업 비슷한 곳을 소개하는 ‘여우알바’ 광고도 알게 됐다.
이랑 씨는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며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시간을 이용해 ‘키스방’에서 서너 달 일을 했다. 이곳에서 알게 된 여성과 전남편의 빚 얘기도 했다. 이 여성은 이랑 씨에게 자신도 빚이 많았는데 파주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서 일을 해 다 갚았다고 했다. 이랑 씨의 귀가 번쩍 뜨였다. 이랑 씨는 절친으로부터 빌린 남편의 사업 자금과 생활비 8천만 원이 늘 가슴 한켠을 짓누르고 있던 차였다. 친구를 볼 면목이 없어 자살 결심도 했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미래가 이랑 씨를 붙잡았다.
용주골 성매매집결지에 전화를 했다. 이랑 씨의 맑고 앳된 목소리를 들은 업주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미성년자는 안 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를 해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업주는 목소리를 들어보면 다 안다며 전화를 끊었다. 이랑 씨는 며칠 후 다시 연락을 했다. 그렇게 서른일곱 살 이랑 씨는 대추벌 성매매집결지에 발을 들여놓았다.

친구에게 빌린 8천만 원을 다 갚은 이랑 씨는 이제 아이들과 살아갈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을 뒤덮고, 성산업은 사실상 초토화됐다. 제법 성장한 아이들의 교육비와 생활비 때문에 이랑 씨는 빚을 다시 얻어야 했다. 이랑 씨는 코로나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2022년 4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성매매집결지도 활기를 띠었다. 그러나 파주시는 2023년 1월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선포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앞길이 캄캄해진 이랑 씨는 고령산 기슭의 보광사를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을 달라며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야당역 환승주차장 옥상에 대추벌 성노동자 서너 명이 탄 승용차가 도착했다.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불금 인파와 상가 조명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성노동자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이내 굵직한 남자 목소리가 낮게 들린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성노동자는 이내 불빛 찬란한 어느 건물 속으로 사라지고, 아파트를 바라보던 이랑 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호에 게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