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의회 손배찬 전 의장은 29일 강원도 동해로 내달렸다. 동해로 떠나기 며칠 전 취재진에게 연락이 왔다.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이 강원도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면서 평소 존경했던 분이어서 지난 17일 탄현면 통일동산에서 있었던 장준하 선생 50주기 추도식에도 다녀왔다며 파주 장곡리에 세워졌던 장준하 선생 시비와 새긴돌을 꼭 한 번 보고 싶다고 했다. 파주바른신문은 손 전 의장을 직접 안내하기로 했다.
손 전 의장은 광탄면 산골짜기에 있던 장준하 선생의 묘역이 2012년 파주시민의 뜻으로 탄현면 통일동산에 모셔진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통일동산으로 모셔올 때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추진위원회’가 있었더라고요. 그 당시 파주시의회 민주당, 국민의힘, 진보당 등 선배 의원님들이 소속 정당을 떠나 추진위원으로 이름을 올리신 걸 보고 정말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손배찬 전 의장은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이 조성되고 2년 뒤 제6대 파주시의회 의원이 됐다. 그리고 제7대 때는 의장에 당선됐다. 손 전 의장은 시의회 운영의 핵심 가치를 여야 협치로 삼았다. 5대 선배 의원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조성에 나선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실제 손 전 의장의 시의회 운영 방식은 집행부를 날카롭게 견제하면서도 동료의원들의 화합을 이끌어내고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2012년 광복절을 맞아 추진된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조성에는 민주당 유병석, 박찬일, 이근삼, 임현주, 한기황, 국민의힘 이평자, 권대현 의원을 비롯 민노당 안소희 의원 등 8명이 참여했다. 당시 파주시 주민자치위원회 연합회장이었던 최유각 현 파주시의회 의원도 장준하 선생 추모공원 조성에 적극 참여했다.
29일 오전 8시 파주시의회 주차장에서 출발한 손배찬 전 의장의 차량은 낮 12시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손 전 의장은 두 손을 모아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새긴돌에 예를 갖춘 후 훼손된 글씨를 어루만지며 백두대간 모양의 길이 3m 높이 1.8m 검은 바위에 새겨진 시를 외치듯 읽었다.
‘오늘도 밤이슬 이렇게 흔빡 젖은 건 외세의 반역이 내리친 벽을 새도록 까부신 피눈물인 줄 왜들 모르나. 하지만 통일은 딴데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마디마디 박힌 분단의 독살 빼앗긴 자유 바로 그 싸움의 현장에서 통일을 찾으라. 벗이여 이 불길 나는 듯 봉우리마다 이어 붙여라. 눈물도 한숨도 노여운 아성으로. 벗이여 나의 비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족해방 통일이라. 이곳 땅밑에서도 이가 갈리는 분단의 원흉은 그 누구도 용서하지 말라. 그리하여 쓰러진 전사는 무덤이 아니라 저 들판을 일으키는 바람으로 잠들지 못하나니. 저 간악한 것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통일신바람, 통일신바람으로 한꺼번에 한꺼번에 몰아쳐라.’
장준하 선생 시비는 1989년 6월 30일 통일의 길목인 파주시 장곡리 검문소 앞에 세워졌다. 그런데 새긴돌과 시비가 불에 그을리거나 글씨가 훼손되고, 부지 사용 문제가 겹쳐 2005년 백기완 선생의 통일문제연구소 부지인 동해시 무릉계곡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동해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조성하는 바람에 시비는 주차장 한켠에 자리잡게 됐다.
파주시의회 손배찬 전 의장은 “백두대간 정신이 서린 이 무릉계곡에 시비가 있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주차장이 너무 새긴돌에 바짝 붙어 있어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의 넋을 기리는 데 적절하지 않아 동해시와 협의를 해 주차장 면적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손 전 의장은 또 “내 바람은 이 시비가 통일의 길목 파주에 있었던 만큼 장준하 선생이 잠들어 계신 통일동산에 다시 모시는 것이다. 그런데 백기완 선생의 통일문제연구소와 동해시가 어떤 입장일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앞서 파주의 한 시민으로서 시비의 훼손을 막지 못해 먼길을 떠나게 만든 잘못을 반성한다.”라고 말했다.
장준하 선생은 191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나 독립군 대위로 일제와 싸웠다. 해방 이후에는 한때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를 역임했고, 군사독재와 싸우다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