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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용주골, ‘군표’ 갱신 소식에 망연자실… 양말에 ‘군표’ 넣어 담 너머로

국내 최대의 미군 기지촌으로 알려진 파주 용주골이 발칵 뒤집혔다. 미국이 극동지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군표(Military Payment Certificate)를 1964년 1월 6일 자정을 기해 일제히 갱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엔군사령부는 주한미군 전 장병에게 금족령을 내리는 한편 미군부대에 출입하는 한국인 종업원의 출입도 모두 금지했다.


 3년 만에 바뀐 군표 갱신은 미군부대 주변 주민들은 물론 상가에까지 큰 충격을 줬다. 특히 군표가 갱신될 때마다 가장 큰 애를 먹은 것은 미군을 상대하는 미군 위안부들이었다. 가지고 있는 군표를 새 군표로 바꾸지 못하면 그냥 휴짓조각이 되기 때문이다.



 ‘군용수표’로 불리는 군표(11cmx6.5cm)는 해외에 주둔하는 군대의 정부가 발행한 특수 화폐이다. 우리나라는 1945년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하면서 모든 미군이 본토 달러 대신 이 군표를 사용하게 했다. 미군을 상대하는 기지촌 사람들은 이 군표로 미군부대 PX 상품을 마음대로 살 수 있어 군표는 미국의 본토 달러보다 그 가치가 상당했다.


 미 군표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알려진 1964년 1월 7일 아침, 미제1기갑사단 예하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파주지구 일대에는 약 5천여 명의 위안부들이 각 부대 철조망 울타리에 몰려들어 양말에다 군표와 돌멩이를 넣어 평소 알고 지내는 미군이 받을 수 있도록 부대 안으로 던져주는 등 구 군표를 새 군표로 바꾸려고 아우성을 쳤다. 


 파주의 텍사스 거리라고 불리는 용주골의 상가 진열대에서는 ‘군표’를 가지고 살 수 있는 미군 PX 물품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고, 1,700원에 거래되던 10달러짜리 ‘군표’가 300원으로 곤두박질치면서 암거래 시장 상인들은 군표를 갖고 용주골 미군휴양소 RC1(Recreation Center)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국제결혼을 한 여성들에게는 군표 교환의 특혜를 준다는 정보를 접한 암달러상들은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몰려들었다. 위안부들도 국제결혼을 한 동료에게 구 군표를 맡기며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10달러에 1,700원 하던 군표를 300원에 사들인 포주들은 평소 알고 지내던 미군에게 뒷문으로 넘겨줘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이후 한미 양국은 1973년 11월 19일 오전 6시 30분을 기해 ‘주한미군의 군표(MPC) 사용을 금지하고, 앞으로 주한미군 군대시설 안에서의 모든 거래에서 미국 본토 달러가 공적 지불 수단이 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1945년 미군의 한반도 점령과 함께 사용돼 온 미 군표는 28년 만에 자취를 감추게 됐다. 미 군표는 전시 또는 준전시 상태의 특정 지역에서 달러 가치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전 세계 중 한국과 월남 두 나라에서만 사용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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