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인 1991년 5얼 12일 파주 광탄면 영장리 출신 김기설의 영결식이 서강대 청년광장에서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김기설 사회부장은 5월 8일 오전 6시께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군사정권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 씨가 김 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라며 강 씨를 구속했다. 대법원은 2015년 5월 14일 무죄를 선고했다. 경희대 출신 최종환은 당시 김기설 사회부장과 자취방에서 함께 지내는 등 각별한 사이였다. 최 시장은 91년 5월 8일 지방에 가던 중 분신 소식을 듣고 급히 되돌아오는 등 충격에 빠졌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랬던 최종환은 현재 파주시장이 됐다.
봄날 주문진 동해바다. 예순을 넘긴 돼지, 닭, 양띠 중년들이 사진가의 구령에 맞춰 하늘로 튀어 오른다. 수차례 반복되는 다시 뛰기에 모두 박장대소 어린아이가 된다. 공무원 정년퇴직, 사업가, 사진가의 길을 걸으며 뭔가 답답했을 가슴이 활짝 열리는 듯하다. 지나가는 낯선 눈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뛰어오르고 싶다.
파주시의원 10명이 29일 아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했다. 시의원들은 첫날 상해 임시정부청사 공식방문을 시작으로 1932년 4월 25일 도시락 폭탄 의거가 있었던 홍구공원(노신공원)의 윤봉길 기념관과 애국지사 유적지를 탐방한다. 둘째 날에는 연길과 용정으로 이동해 민족운동가들이 자주 올랐던 일송정, 간도 지방의 해란강, 윤동주 시인이 다니던 용정중학교와 생가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5월 1일에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과 1939년 이시이 시로가 창설한 하얼빈의 일본군 731 생체실험부대를 둘러본 후 마지막 날에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문화탐방을 할 계획이다. 그러나 출국장에서 아쉬움도 남겼다. 29일 오전 7시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파주시의원들이 가방을 정리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파주바른신문 취재진이 단체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이용욱 의원이 “기왕이면 해외연수 펼침막을 들고 찍자.”라며 의회사무국 직원에게 펼침막을 달라고 했다. 연수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산업기술원 지방자치연구소 직원이 손사래를 치며 “여기 공항에 기자들이 많아 펄침막을 들고 찍으면 안 된다.”라고 만류했다. 외유성 연수로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펼침막 내용은
파주시가 산불방지 총력 대응을 선포한 9일 아침 8시 40분께 육군항공대 울타리 하나 사이에 있는 논두렁이 타올랐다. 이곳은 농업기술센터(소장 차정만) 바로 앞에 있는 논이다. 연기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치솟았다. 그러나 불과 100여 미터 앞 파주시농업기술센터 공무원들은 잠잠하다. 파주시가 9일 아침 언론에 배포한 산불방지 총력 대응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가 ‘경계’ 단계로 상향 발령됨에 따라 대형 산불방지를 위해 산불대책 상황실 운영 강화 및 전 직원의 6분의 1 인원 근무조 편성 등 비상근무체계를 확립해 총력 대응태세를 갖추고 주요 등산로 등 산불취약지역에 산불감시원,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을 집중 배치해 불 놓는 행위를 엄격히 단속한다. 주요 산불발생 원인인 논‧밭두렁 및 쓰레기 소각행위를 집중 단속하고 등산객을 대상으로 산불예방 캠페인 및 리플릿 배부를 통한 주민 홍보도 실시해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다. 또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차량 방송 및 각 읍면동 이·통장들을 통한 마을방송을 실시하고 마을 주민과 농업인들에게 산불방지 계도문자를 발송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산불 발생 시에
탄현면 낙하리 다온숲 수제 맥주 공장. 호기심 가득한 지체 장애우 10여 명이 맥주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위생 모자를 쓴 세 명의 브루어(Brewer)는 조심조심 체험생의 손을 잡고 양조 탱크에 올라 맥주가 만들어지는 공정을 설명한다. “뭐 조금 어색하긴 하죠. 그래도 아침이면 아주 가벼운 발걸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두근거림이 심장을 젊게 하는 것 같습니다.” ‘다온숲 브루어리’는 1957년생 초등학교 동창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맥주 경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수년 간 학원과 전국을 발품 팔아가며 연구했다. 설립자금은 건설업을 하고 있는 박호식 대표가, ‘브루어’는 양용복 전 파주시농업기술센터 소장, 이수용 전 경제복지국장과 고양시교육청 노재홍 전 경영지원국장이 맡았다. 파주 출신답게 맥주 이름도 임진강, 디엠지, 도라산, 다온, 파주, 자유로, 판문점 등으로 지었다. 맥주를 빚는 물은 지하 500m 암반수다. 그리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재료와 40여 년 공직생활에서 얻은 정직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가 표현되는 맥주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베트남 하노이 비핵화 2월 담판이 결렬됐다. 3월 첫날, 한반도 평화수도 파주시 임진강은 썰물이다. 허리춤만큼 바닥이 드러나고 남쪽 반구정과 북쪽의 장단반도가 가까워졌다. 썰물을 틈탄 어부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노 젓는 배가 촘촘하게 늘어진 어망 사이를 오르내리며 어구를 매달면 모터 달린 통통배는 어업에 필요한 어구를 실어나른다. 철책 안 임진강 어부들은 밀물과 썰물을 거스르지 않는다.
노래 ‘이등병의 편지’ 원작자 김현성 씨 마을에는 광탄극장이 있었다. 당시 파주의 9개 극장 중 규모가 가장 작았다. 광탄극장(대표 정주호)은 1967년 광탄면 신산리 34번지에 건평 80평에 관객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으로 개설됐다. 1970년 문을 닫은 광탄극장은 7,200여 명이 관람했다. 당시 광탄면에는 현재 육군 전진부대 자리에 캠프 패터슨(Camp Peterson)과 신산리 새슬막에 캠프 스탠톤(Camp Stanton) 등 미군부대가 있었고, 오산리 기도원 쪽에는 미군병원이 있었다. 파주시는 광탄극장이 위치한 길 300여 미터를 전진부대와 연계해 ‘이등병의 편지 거리’로 조성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파주에는 한국전쟁 이후 외국 군대의 주둔으로 대규모 기지촌이 곳곳에 들어섰다. 행정당국과 경찰에 등록한 미군 상대 여성은 4,800여 명이었다. 비등록 여성까지 합치면 약 1만여 명이 기지촌에 거주했다.
남북 9.19 군사합의서에 따라 비무장지대 안 감시초소(GP) 10곳이 시범 철거됐다. 남북한 GP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측은 160여 개, 남측은 60여 개를 설치했다. 관측소를 의미하는 OP를 합치면 북한군은 280여 개, 우리 군은 100여 개를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60년대 파주지역 민간인통제선에는 감시초소(GP) 14개와 관측소(OP) 4개가 있었는데 모두 미군 병사 이름이나 전쟁을 의미하는 명칭 등이 붙여졌다. 장단면 장단반도에서부터 제인(Jane), 베릴(Beryl), 글래디스(Gladys), 앤(Anne), 케이티(Katie), 바베라(Babera), 루시(Lucy), 터너(Turner), 헨드릭스(Hendrix), 홈다히(Holmdahi), 디서어트(Dessart), 존슨(Johnson), 사일러(Seiler), 니나(Nina) 등 감시초소(GP)와 매지(Mazie), 루시(Lucy), 스토리(Story), 도르트(Dort) 등 관측소(OP)가 군사분계선을 따라 진동면 초리까지 이어졌다. 비무장지대의 GP 철거는 평화시대로 가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때를 같이 해 최종환 파주시장은 파주를 ‘한반도 평화
황금 돼지해인 2019년 1월 1일 새벽 5시. 월롱산 새해맞이에 1천여 명이 모였다. 월롱면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사상만)가 ‘복 떡국’ 1,200 그릇을 해맞이 인파에 제공했고, 시민이 직접 쓴 소원지를 볏짚 낟가리에 꽂아 태웠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한해의 풍년을 비는 기원제를 올리는 등 희망에 찬 2019년을 맞이했다.
“미군이 여기서(무건리훈련장) 하는 훈련은 사격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전술훈련입니다.” 육군 1군단 교훈처장이 지난 19일 무건리훈련장 안에서 파주시의원과 법원읍 주민들에게 한 말이다. 마치 사격만 안 하면 훈련 피해가 없는 것처럼 들렸다. 법원읍 주민이 거짓말 그만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다른 주민은 훈련장이 문제인데 사격 여부로 접근하는 것은 본질을 피해가려는 술책이라고 반박했다. 전술훈련이면 괜찮은 걸까? 파주에는 스토리사격장(215만 평), 다그마훈련장(175만 평), 무건리훈련장(1050만 평) 등 대규모 훈련장이 있다. 훈련이 시작되면 동두천, 의정부, 파주 등 각 지역 주둔 부대가 탱크 등 전술 장비를 끌고 훈련장으로 이동한다. 이 과정에서 인명 피해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발생한다. 파평면 장파리 정완수 씨 일곱 살짜리 아들이 미군 훈련 차량에 깔려 숨졌고, 문산읍 마정리에서 미2사단 2여단 506본부 중대 차량에 김 아무개 노인이 치어 숨졌다. 2001년 7월에는 파평면 덕천리 청년 두 명이 폭포어장 앞에서 간판 작업을 하던 중 다그마노스훈련장으로 이동하던 미2사단 방공대대 소속 장갑차에 받혀 머리를 다쳤다. 2002년 6월에는 신
열여섯 살에 파주 기지촌 생활을 한, 이제는 할머니가 된 미군 위안부가 직접 뜨개질한 털목도리를 들고 ‘엄마 품 동산’을 찾았다. 할머니는 재미작가 김원숙 씨가 창작해 파주시에 기증한, 엄마가 아이를 안은 모습의 ‘Shadow Child’ 작품에 털모자를 씌우고 목도리를 둘렀다. 할머니는 조각상 얼굴을 어루만지며 “춥지... 이제는 아프지 말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내가 정말 미안해...”라며 울먹였다.
최종환 파주시장과 이성철 파주시의원이 공식석상에서 무건리훈련장의 주민 피해를 문제 삼았다. 미군전용 공여지인 스토리사격장(215만 평)이 잠정 폐쇄되면서 주한미군 훈련이 무건리훈련장으로 몰리는 바람에 직천리, 웅담리는 물론 법원읍 시내 주민들까지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무건리훈련장은 500여 만 평에서 1,000만 평으로 확장됐다. 국방부는 훈련장 확장을 이유로 400년 된 법원읍 오현리 마을을 철거하고 주민들을 모두 내쫓았다. 주민들은 크게 반발했다. 자신의 묘비를 나무판에 새겨 국방부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고 금촌 길거리에서 삼보일배를 올리는 등 저항했다. 당시 파주시는 주민들이 내건 펼침막을 기다렸다가 철거했다. 경찰은 주민들을 닭장차에 태워 연행하고 이를 항의하는 주민 수십여 명을 체포해 일부는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수십여 명의 주민에게 벌금 10만 원씩 부과됐다. 정치인들의 외면은 더했다. 군 장성 출신 국회의원은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주민들이 국회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사진전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었지만 그 국회의원은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뼛속까지 파주사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정치인 역시 주민들의 집회나 옛 직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