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소 목장 옆에 탱크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작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 4시. 굉음과 함께 탱크가 좁은 마을 길을 지그재그로 빠져나간다. 새벽잠을 설친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수십여 년이다. 탱크가 햇볕에 널어놓은 벼를 짓밟고 가거나 농사용 트랙터를 들이받기는 다반사였다. 탱크훈련장을 만든다며 400여년 된 마을을 철거하고 주민을 내쫓기도 했다. 월롱산을 에워싼 훈련장의 탱크는 어느덧 당연한 일상이 됐다. 두 여중생이 탱크에 깔려 세상을 떠났다. 훈련이 시작되면 파주를 비롯 경기북부 도로는 탱크 물결이다. 파주사람은 그렇게 탱크와 살아왔다. 임진강 코스모스 행사장에 탱크가 전시됐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 안보의식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고,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군사문화적 발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눈만 뜨면 지겨울 정도로 만나는 탱크를 행사장에까지 전시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탱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 행사장에 탱크를 전시하면 안보의식이 투철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해석은 분단생활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탱크가 안보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미군 기지촌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병사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이은숙(52, 미국명 Natasha Pruss) 씨가 파주시의 도움으로 호적과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자신의 호적상 성씨가 이 씨가 아니라 오 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 씨는 52년 만에 성을 찾게 해 준 파주시에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은숙 씨는 1966년 천현면 웅담리에서 태어나 1973년 천현초 분교인 웅담초교에 입학해 5학년 때인 1978년 미국으로 입양돼 40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적남초교로 개교한 웅담초교는 무건리에서 웅담리로 이전해 있었다. 권혁문 교감 선생님이 은숙 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고를 두 시간여 뒤진 끝에 은숙 씨의 생활기록부를 찾았다. 은숙 씨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생활기록부에는 외할머니가 보호자로 기록돼 있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은숙 씨의 학교 생활에 대해 ‘깨끗하고 항상 명랑하며 용의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다. 근면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음악과 무용에 재능이 있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우등상을 두 번 받았다.’라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은숙 씨는 법원읍사무소 윤병렬 읍
자작나무가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자작나무는 돌담을 빼곡히 채운, 엄마 찾는 사연을 세상 어딘가 있을 엄마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이 파랗다 못해 시리다. 그렇게 맑은 날, 해외입양인의 고향, 엄마 품 동산이 둥지를 틀었다. 가수 인순이가 말한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울고 싶다고... 아시아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일컫는 아메라시안 150여 명이 12일 엄마 품 동산에 모였다. 곳곳이 눈물바다다. 그 옛날 엄마가 아궁이에 자작나무로 불을 지필 때도 그렇게 울었을까?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을 살라 ‘자작나무’가 됐다고 한다. 자작나무꽃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문산 선유리 기지촌 뒷산에는 자작나무가 많았다. 미군을 상대하다 죽은 기지촌 여성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산 주인에게 들킬세라 후다닥 봉분 없는 무덤을 만들고 꼭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자작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 자작나무는 엄마를 거름 삼아 쑥쑥 자랐다. 자작나무 껍질엔 기름이 많아 결혼식 화촉을 밝혔다. 엄마 품 동산의 자작나무는 엄마를 기다리는 나무다. 엄마 품 동산에 300여 명이 모였다. 사회자가 연신 내빈을 불러낸다. 최종환,
판문점 북쪽에 유엔사 기념비가 서 있다. 한국전쟁 참전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유엔사가 남북철도 공동점검을 불허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남북의 철도 연결 사업이 차질을 빚게 될까 염려하는 시선이 많다. 유엔군 사령관은 주한미군 사령관이 맡고 있다. 그리고 판문점은 파주시 진서면 널문리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 연결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에도 축사를 통해 ‘철도와 도로 연결은 한반도 공동번영의 시작’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하는 유엔사 몽니 부리기에 ‘파주평화경제특구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박정 국회의원과 지역 정치인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윤후덕 국회의원과 최종환 파주시장의 생각도...
우리나라 출산율이 한 자릿수 아래로 떨어졌다. 세계에서 최하위라고 한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경제가 아주 어려웠던 한국전쟁 시기에도 보통 5명~7명을 낳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경제 탓만은 아닌 듯하다. 사진은 금줄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대문의 양쪽 기둥 사이에 금줄을 걸어 새 생명체의 출산을 알렸다. 금줄은 왼쪽으로 꼰 새끼줄로, 여기에 빨간 고추, 숯, 솔가지, 길쭉한 한지 등을 꽂았는데, 아기의 성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통 아들은 고추, 딸은 숯을 꽂았다. 금줄은 삼칠일(21일) 동안 대문에 걸어두면서 가족이나 이웃 주민의 출입을 금한다. 특히 부정한 곳에 다녀온 사람은 출입을 절대 금하는데, 세이레(삼칠일) 되는 날 새벽에 삼신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리고 나서 잠시 후 산모가 미역국을 먹으면 비로소 금줄을 내리고 이웃 사람들의 출입을 허용한다. 민선7기를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있다. 이제 막 취임한 시장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여러모로 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인사 방향을 은근히 압박하려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구 짖는다. 새 생명의 무탈함을 기원하며 금줄을 쳤던 것처럼
6.13 지방선거에서 ‘젊은 일꾼’을 내세우며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목진혁 파주시의원(금촌 1,2,3동/월롱면/파주읍)이 22일 인천 송도센트럴파크호텔에서 개최된 파주시의회 첫 의원연수에 불참했다. 목진혁 의원은 취재진이 첫 의원연수 불참 사유를 묻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수차례 연락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목 의원은 1983년생으로 파주시의원 14명 중 가장 젊다. 이날 손배찬 의장을 비롯 13명 의원은 모두 참석했다.
경의선 임진강 하행선 철교다. 상행선 철교는 한국전쟁 때 파괴돼 교각만 남았다. ‘독개다리’라고도 불린 경의선 임진강 철교는 정전협정 후 철도 침목을 깔아 그 위로 차량이 통행했다. 이후 임진강 철교는 1998년 6월 15일 통일대교가 개통되면서 기찻길로 복원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 방문을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과 판문점회담을 할 때는 통일대교를 건넜다. 임진강 철교는 남북통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남북 판문점 군사회담이나 적십자회담을 할 때 그리고 스웨덴 등 중립국감독위원회 관계자들이 이 다리를 건넜고, 1972년 5월에는 박정희 정권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노동당 박성철 제2부수상이 평양과 서울을 오갈 때도 이 다리를 건넜다. 독개다리는 분단 이후 최초로 7.4남북공동성명을 만들어 낸 통일의 가교였다. 임진강 철교를 건너기 위해서는 사전 신원조회와 함께 한미합동검문소를 거쳐야 했다. 검문소는 철교 양쪽에 하나씩 있었다. 차 한 대씩만 가까스로 다닐 수 있는 철교 입구에는 빨강 파랑 신호등이 걸려 있었는데, 이 신호에 따라 임진강 건너와 임진각 쪽 차량이 번갈아 통행했다. 경의선 열차는 현재 임진강 철교를 건너 대한민국 최
“미군병원이라고 불렀어요. 적성의원요? 그건 모르겠고... 그 뭐라고 할까... 양놈들 상대하는, 왜 그 양색시 거시기 하던(성병 치료) 데였어요. 돈 엄청 벌었죠. 저기 저 아래, 경찰 파출소 자리에서 그거 진료를 하다가 이쪽에 병원을 짓고 옮겨온 거예요. 그때 미군들이 건축 재료를 많이 도와줬어요.” 미군 기지촌이었던 장파리 주민들은 이 병원을 이렇게 기억했다. 주민들은 병원 건물이 지어진 때를 1958년께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파주시 건축물대장에는 1965년 신 아무개 씨가 건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보건소에도 의료기관 등록 기록이 없다. 아마도 당시 기지촌 특성상 그냥 집을 지어 운영하다가 미군 철수와 함께 건물을 매각하면서 뒤늦게 건축물 신고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미군병원으로 불렸던 이 병원에서 1960년대 서무(사무장)를 담당했던 손 아무개 씨는 현재 미국에 살고 있다. 손 씨는 “병원 이름이 ‘평화의원’이었다. 입원실이 다섯 개 있었으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검진만 했다. 그러다가 이 평화의원은 미군 철수와 함께 문을 닫았고,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에 다시 병원을 내면서 이 병원도 평화의원으로 부르게 됐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이
9일 낮 12시 50분께 월롱면 건축자재 도장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장 3개 동을 모두 태우고 3시간여 만에 진화됐다. 지역구가 월롱인 정치인들도 현장에 도착했다. 한 정치인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진화 현장을 누비며 휴대폰으로 영상과 사진을 찍었다. 현장 지휘관은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폭염 속 땀 범벅된 소방대원이 여기저기 탈진해 앉아 있고, 의용소방대원들과 공무원, 주민들이 생수와 얼음을 나눠주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런 시간에 정치인은 접근이 차단된 현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댔다. 의원님, 그건 우리가 찍어도 되는데...
“저기 저 건물이 내가 지은 거야. 요기, 미군 댄스 홀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미군들하고 같이 술 먹고 춤추고 하다가 들어가는 방인데 ‘홀 하우스’라고 불렀지.” 파평 장파리에서 목수 일을 한 손진규(96) 할아버지가 동시에 침대 30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미군 클럽 ‘럭키 바’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일제강점기의 공창제도가 폐지된 것은 1947년 11월 14일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군부대 안에 ‘특수위안대’를 설치했다. 마산에 연합군 위안소 5개소가 허가되었고, 서울에 3개 소대, 강릉에 1개 소대, 춘천, 원주, 속초 등에 총 79명의 위안부가 배치됐다. 연합군 위안소는 1954년 모두 폐쇄됐다. 그러자 장기 주둔하게 된 수만 명 미군 병사들의 성욕 해소가 미군기지 주변의 주요한 문제가 됐다. 1957년 7월 유엔군 사령부가 일본 도쿄에서 서울로 이전하면서 한국정부와 미군은 서울에 접객업소 12개소, 인천과 부산에 댄스홀 14개소를 위안 시설로 지정했다.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1961년 11월 제정됐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보건사회부, 법무부, 내무부 합동으로 성매매 단속을 면제해주는 이른바 ‘적선지구’ 104개소를 지정해 경
‘지난 29일 동안 19명의 캠프 게리오웬 군인들이 용주골 클럽에서 성병에 걸렸다. 성병 감염 클럽을 공개한다.’ 1960년대 파주 미군부대 정문에 걸려 있던 성병 감염 안내문 내용이다. 나무로 제작된 이 안내판은 숫자를 교체할 수 있도록 돼 있어 당시 성병 감염이 심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안내판에 공개된 미군 상대 업소는 ‘나이아가라’, ‘뉴 서울’, ‘세븐 업’, ‘플라밍고’, ‘진주’, ‘킹스타’, ‘로망스’, ‘프리 버드’, ‘퀸 비’ 등 대부분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 지역 클럽으로, 업소명이 구체적으로 표기돼 있다. 정문에는 또 ‘서쪽 골목에는 등록된 기지촌 여성 500여 명과 등록되지 않은 여성 300여 명이 있다. 그들은 예외 없이 모두 성병에 걸렸거나 최근에 성병에 걸린 적이 있다. 따라서 이들이 당신들을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이들 기지촌 여성 중 한 명을 이용(관계)한다면 성병에 감염될 것이다. 당신 가족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남은 생애 동안 불구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성병 감염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이 경고문 중 ‘등록된 기지촌 여성과 등록되지 않은 여성’이 나오는데, 이를 미군 측이
“한국전쟁 전에는 나룻배로 임진강을 건넜죠. 그리고 공병대 부교가 설치됐는데 홍수에 떠내려갔고, 그래서 다시 철 기둥과 나무로 만든 가교를 세웠는데 전쟁이 일어난 거예요. 그때 미 24사단 공병대 소속 리비 중사가 인민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임진강 가교 북단을 폭파시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후에 대전에서 죽었다던가... 그 건 잘 모르겠어요. 여하튼 ‘리비교’가 건설되기 전에 케이블카(곤돌라)를 이용해 보급품을 수송했어요.” 임진강 리비교에서 보초를 섰던 손 아무개(96) 옹의 기억이다. 손 옹은 고향이 개성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군에 입대해 정규 군사훈련을 받았다. 손 옹은 여수, 순천 사건 진압과 지리산 공비 토벌에 나서기도 했으며 1956년 하사관으로 제대했다. 손 옹은 육군 1사단 소속으로 1953년 리비교가 세워지기 전 임진강을 건넜던 나룻배와 가교, 곤돌라를 모두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파주시는 현재 105억 원을 들여 ‘리비교 관광자원화’ 보강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또다시 ‘리비교’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