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사진연구소 사진가들이 엄마품동산 벽화작업 작가들의 호출 명령을 받고 30일, 금촌에서 새벽 어둠을 가르며 법원읍 초리골로 내달렸다. 벽화작업 첫날인 29일 기습적으로 내린 비 때문에 비닐 천막으로 작품을 가리느라 아우성이었던 전날과 달리 새벽 밤하늘에는 별이 반짝였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 탓인지 일정보다 일찍 일어난 작가들은 초호쉼터 펜션 계단을 내려오다가 목을 길게 빼고 꽉꽉거리는 두 마리 거위 앞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손짓 발짓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가자 거위는 슬그머니 길을 비켜주었다. 초리골 삼봉산 새벽 먼동이 초호쉼터의 곱게 물든 단풍나무를 비추었다. 삼봉산은 1968년 북한의 124군부대 김신조 무장공비가 서울 청와대를 습격하러 갈 때 이 마을 나무꾼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날이 어슴푸레 밝을 때쯤 엄마품동산에 도착했다. 벽화 작업대 역할을 할 크레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콘크리트 벽에는 전날 밤 빔프로젝트로 스케치한 작품의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전혜주 작가는 그 스케치가 영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치맛자락이 조각조각 날려 임신한 엄마를 지나 무궁화꽃이 되는 그 연결고리와 만개한 꽃과 봉우리를 잇는 크기가 조화롭지 않아 다시 스케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빔프로젝션을 하려면 날이 어두워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작업을 중단하고 하루종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혜주 작가의 작품 드로잉을 예리한 칼로 선을 따라 오려내 벽에 붙이는 방식의 스케치를 하기로 했다. 전 작가가 드로잉한 대형 종이를 여러 변수를 고려해 미국에서 화구통에 넣어 가져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드로잉을 도려내는 칼작업은 네덜란드에서 벽화작업 도우미로 온 서수정(Sascha Bouwknegt) 씨와 미국의 최란(Brooke Vermullen) 씨가 맡았다.
전혜주, 이병숙 작가는 크레인 작업대에 올라 전날 밤 스케치한 작품 윤곽을 살펴보는 등 새로 디자인된 이미지가 삽입될 경우 작품 전체가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전 작가는 아이패드에 저장된 작품을 이 작가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구했고, 그럴 때마다 이 작가는 자신이 잘 표현할 수 있는 디테일한 그라데이션을 자문하는 등 두 작가는 입양인의 고향 엄마품동산에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아름다운 재외동포정신을 담아내려고 했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이날도 연풍리 주민인 현장사진연구소 사진반 회원들이 잔치국수를 만들어 왔다. 입양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잔치국수가 엄마를 닮았다고 한다. 점심을 준비한 회원 중에는 입양을 해 키우고 있거나 입양을 보낸 상흔이 있어 해외입양인에 대한 감정은 늘 눈물이다. 주민들은 잔치국수에 계란지단 등 고명을 올려주며 손짓 발짓으로 많이 먹으라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