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만 동동 굴렀던 벽화작업 첫날…기어코 새벽이 밝아오고…”

  • 등록 2024.11.06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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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해외 20만 입양인의 고향 엄마품동산에 새벽이 밝아왔다. 이날은 한국전쟁과 함께 조리읍에 자리 잡았던 반환 미군부대 캠프하우즈 콘크리트 벽에 ‘엄마’를 그리는 날이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집단 현장사진연구소(이하 현사연)는 벽화 현장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벽화를 그릴 해외입양인 전혜주(Leah Forester), 이병숙(Karen Woodburn) 작가를 기다렸다. 1980년생인 전혜주 작가는 4살 때 부산에서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분자, 세포, 발달생물학을 전공한 이병숙 작가는 1984년생이며 생후 19개월에 미국 미시건주 작은 마을로 입양됐다.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간 미앤코리아 김민영 대표는 전화로 항공편 연착을 알렸다. 현사연 이용남 사진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날이 밝으면 빔프로젝터에 띄운 작품이 콘크리트 벽에 투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벽화작업을 위해서는 그 벽에 작품의 윤곽을 스케치해야 하는데 동쪽 하늘에 먼동이 터오고 있었던 것이다.  



 기어코 날이 밝았다. 새벽 4시 도착 예정이었던 전혜주, 이병숙 작가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인천공항 대형택시를 타고 엄마품동산에 내렸다. 두 작가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새벽 스케치를 놓친 아쉬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야 꽃이 피어나듯 상실로 인한 빈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씨앗을 발견하고 강인한 꽃으로 피어난다.”라는 전 작가의 작품 설명이 떠올랐다.
곧바로 파주시청 관광과가 준비한 작업 보조용 크레인이 긴 팔을 뻗어 두 작가를 태웠다. 새벽 스케치 없이도 작업할 수 있는 치맛자락 조각을 그려넣기로 했다. 작품의 첫머리에 표현되는 치맛자락 조각은 문화, 언어, 유산, 정체성으로 직조돼 한국전쟁과 함께 이 터에 자리 잡은 미군부대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온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전혜주 작가가 크레인 작업대에 드러누웠다. 긴 여정과 시차 때문에 지쳐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전 작가는 반듯이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꼬리 주름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 작가는 지난 5월 용주골 갈곡천 벽화에도 참여했다. 용주골 주민들의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연풍경원 토끼풀로 꽃다발을 만들어 주민들 얼굴 옆에 놓고 한사람 한사람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이병숙 작가는 현재 워싱턴주 시애틀에 살며 학부모교사협회 등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작은 키의 이 작가는 차분하고 섬세한 자신의 성격을 십분 발휘해 벽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스케치와 명암 작업에 온정성을 쏟아부었다. 이 작가는 작업 중에도 현장을 방문한 한국인을 만나면 웃음 띤 얼굴로 두 손가락을 모아 하트를 날렸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인종에 대한 최고의 예우이다.

 민주당 윤후덕 국회의원이 응원을 왔다. 윤 의원은 지난 5월 용주골 벽화에도 참여했고, 2018년 엄마품동산 준공식 때는 가수 인순이와 함께 입양인들을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전혜주 작가는 지난 5월 만남으로 윤 의원을 기억했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의원인 줄 몰랐다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에 놀라움을 표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페인트를 날아다주는 도우미를 자원했는데, 국회에 일이 있어 출석했다가 오후에 다시 오겠다며 두 작가를 격려했다. 윤 의원은 약속대로 오후 3시에 현장을 다시 방문했다.



 파주읍 연풍리 주민이자 현장사진연구소 사진반 회원들이 점심을 만들어 왔다. 첫날 메뉴는 각종 나물을 취향껏 넣고 고추장과 들기름에 비벼 먹는 비빔밥이었다. 주민들은 큰 대접에 밥과 나물을 듬뿍 담아줬다. 건장한 청년도 배부를 만한 양이었다. 두 작가는 이 비빔밥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나중에 두 작가는 미앤코리아 대표에게 “한국에서는 밥을 남기면 안 된다는 풍습이 있는 것 같아 온 힘을 다해 먹었다.”라며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오후에 벽화작업을 도울 입양인 두 명이 서울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1976년 2월 한국에서 태어나 하루 만에 입양기관으로 보내졌고, 3개월 후 네덜란드로 입양된 서수정(Sascha Bouwknegt) 씨와 1987년 1월 부산에서 태어나 미국 미시간주로 입양된 최란(Brooke Vermullen) 씨였다. 요리사인 서수정 씨는 네덜란드에서 ‘음식 나눔’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등 음식을 소통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아 출장음식 서비스회사를 운영했다. 서 씨는 벽화작업 작가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요리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최란 씨는 그랜드밸리 주립대학에서 건강에 대해 공부하면서 등산, 요가, 자전거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을 벽화작업 자원봉사에 쓰겠다고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새벽에 못 한 작품 스케치를 다시 하기로 했다. 크레인 근무 시간이 조정됐고, 현사연도 빔프로젝터를 설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해넘이를 기다렸다. 긴 그림자가 콘크리트 벽에 드리우는가 싶더니 이내 컴컴해졌다. 얼굴 없는 여인이 임신한 배를 움켜쥐고, 무궁화꽃과 줄기에는 또 다른 여인과 태아, 그리고 두 아이 등 네 명의 생명이 숨어 있다. 엄마품동산을 방문하게 되면 벽화에서 네 생명을 꼭 찾아보길 권한다.

 작품 스케치는 밤 8시가 넘어 끝났다. 녹초가 된 두 작가는 법원읍 초리골 초호쉼터 펜션으로 향했다. 우능제 대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먼길을 떠나야 했던 입양인들에게  숙소를 제공할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고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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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남 기자 hj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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