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가 발간하는 책… 사실관계 신중해야”

  • 등록 2025.02.16 21: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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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은 파주를 더 바르게 멀리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파리 마을이야기’는 파주의 보통이자 특별한 기록으로 우리 모두가 기억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으로 파주가 멀리 바르게 도약하길 기원합니다.” 
 
 김경일 시장은 ‘장파리 마을이야기’ 발간 이유 중 하나를 파주의 과거와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기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주바른신문은 김경일 시장 취임 이후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간행물이 김 시장의 바람대로 과거 역사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2022년 10월에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 미군클럽 ‘라스트 찬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라스트 찬스는 리비교를 건너 장파리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부대로 복귀하기 전 들를 수 있는 ‘마지막 바’라는 의미를 담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휴가를 나온 미군들이 맨 처음 접하는 클럽이었기에 ‘퍼스트 찬스(First chance)라고도 불렸다.” 그리고 이 클럽 건물을 최초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파주바른신문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라스트 찬스’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에서 내려온 김중환(1931년생) 씨가 1964년부터 준비해 1965년 상량식을 갖고 1966년 영업을 시작했다. 김 씨가 장마루촌에 미군 클럽을 짓게 된 까닭은 자신이 운영하던 파주읍 연풍리 용주골 ‘해피클럽’의 경영난 때문이었다. ‘해피클럽’은 미군기지촌 용주골에서 가장 오래된 업소다.



 ‘해피클럽’에서 매니저 역할을 한 김 아무개(78) 씨는 김중환 씨를 이렇게 기억했다. “돈 잘쓰고 호탕한 성격과 훤칠한 키에 얼굴까지 잘생겨 사람들이 영국신사라고 불렀죠. 아주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해피클럽 경영이 좀 어려워지니까 장파리에 미군들이 많이 나온다며 거기에 클럽을 하나 지어야겠다고 했어요. 해피클럽을 정리하면서 장마루촌으로 마지막 사업을 하러 간다는 말을 했지요. 그 양반은 자신의 생각이 그냥 계획이고 그대로 실천을 하는 사람이에요.” 김 씨는 ‘라스트 찬스’ 건물을 지을 때 몇 번 가서 들여다봤는데, 실내 벽이나 바닥에 코끼리 문양을 넣고 바닥에 광을 내는 도기다시 방식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했다.
 
 ‘해피클럽’ 등 미군 출입업소에서 사진을 찍었던 김 아무개(88) 씨도 ‘라스트 찬스’ 신축 공사를 거들었는데 “김중환 사장은 아주 멋있는 분이었죠. 어려운 사람들 도움도 많이 줬고, 일하는 아가씨들한테도 인간적으로 대했어요.”라고 기억했다. 파주군 한미친선협의회 임원을 지낸 조 아무개 씨도 김중환 씨를 기억했는데, “‘라스트 찬스’라는 업소 이름은 마지막 사업이라는 뜻으로 지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 파주바른신문이 입수한 일수 수첩에는 “장마루에 미군이 나온다고 한다. 임진강 건너서 엄청 나온다고 하는데 해피클럽을 정리하고 장마루로 가야겠다. 내 인생에 마지막 찬스다. 내 사업에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찬스…”라는 낙서와 “지겹다 일수. 해피클럽 정리. 술을 너무 먹었다. 눈이 안 보이네.”라는 푸념 섞인 하소연이 삐뚤빼뚤 쓰여 있다. 당시 기지촌 일수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매일 갚아나가는 것이었는데, 돈을 빌려준 사람이 업소를 직접 방문해 돈을 받으면 이를 증명하는 도장을 미리 나눠준 일수 수첩에 찍어주는 방식이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일수쟁이’라고 불렀다. 





 ‘장마루 마을이야기’는 또 1968년 임진강을 건너 서울 청와대를 습격한 김신조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1968년 1월 21일에 김신조 외 30명이 떼를 지어 장파리를 넘어 식현리, 법원리 초리골을 지나 북악산을 넘어 청와대를 공격하려다가 일망타진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당시 떼를 지어 넘어온 간첩무리를 신고한 사람이 장파리에 살던 우성재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우씨네 삼형제가 그해 겨울 뒷동산에 나무하러 갔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더니 이리로 오라고 소리를 질러대며 이들을 끌고 갔다.”
 
 책은 ‘우성제’ 씨를 ‘우성재’로 표기하며 장파리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우성제의 집은 법원리 149-2번지 초리골의 우씨 집성촌이었다. 삼봉산에서 김신조 부대원과 마주친 나무꾼도 삼형제가 아니라 우희제(30), 우경제(22), 우철제(21), 우성제(18) 등 네 명이다. 그럼에도 ‘장마루 마을이야기’는 어떤 확인을 거쳤는지 ‘삼형제’라고 기술하고 있다. 김신조 부대원도 30명이 아니라 31명이다.





 그런데 이같은 ‘장파리 마을이야기’의 내용 일부가 법원도서관 옆 ‘초리골 관광 안내판’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안내판에는 ‘김신조 무장공비 숙영지’가 소개되고 있는데 “당시 초리골 마을에 살던 우씨 삼형제는 나무하러 비학산에 갔다가 무장공비에게 발견됐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3형제는 파출소에 신고했다.”라는 내용이다. 이 안내판도 파주시가 발간한 ‘장파리 마을이야기’처럼 우씨 삼형제라고 기록하고 있다. 무장공비 숫자도 30명으로 기록했다가 1자를 스티커로 따붙였다.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시민채록단이 있다. 지역 주민들의 구술을 정리해 책으로 발간하는데, 작가는 구술을 그대로 옮길 것이 아니라 그 구술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생의 ‘마지막 기회’로 삼은 ‘라스트 찬스’가 미군들의 ‘마지막 술집’으로 둔갑되고, 김신조 무장공비를 신고한 우성제 씨 등 나무꾼 사형제가 장파리 출신으로 활자화되는 것은 공공기관이 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러한 내용을 그대로 초리골 관광 안내판에 소개하는 것  역시 파주시 행정이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이용남 기자 hj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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