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의회 자치행정위(위원장 최유각) 여성의원 3명이 감기몸살로 링거주사를 맞으며 2019년 새해 예산을 심사하고 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심하게 앓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박은주 의원은 병원의 긴급 치료를 받고 부랴부랴 파주시보건소 예산 심사에 출석했다. 최유각 위원장은 공무원들에게 박 의원이 지금 오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달라며 양해를 구하는 등 상임위 시간을 늦춰주기도 했다. 민중당 안소희 의원은 계속 병원 치료를 받아오다 30일 보건소 예산 심사 때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불참했다. 맏언니로 불리는 자유한국당 윤희정 의원은 나이 많은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휴지로 연신 콧물을 훔쳐내며 버티기도 했다. 예산 심사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퍼붓고 있는 자유한국당 이효숙 의원은 동료의원의 감기몸살에 생강차를 타 나르기도 했다. 자치행정위 소속 의원들은 이효숙 의원을 ‘해피 바이러스’, 윤희정 의원을 ‘분위기 메이커’로 부른다. 자치행정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최유각, 박대성, 박은주 의원, 자유한국당 윤희정, 이효숙 의원, 민중당 안소희 의원 등 6명으로 이중 여성의원이 4명이다.
임진각 밤하늘에 불꽃이 타올랐다. 23일부터 사흘간 열린 장단콩 축제는 올해도 성대하게 끝났다. 그러나 최종환 시장은 아쉬움이 남는다. 임진강 건너 개성시 주민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 시장은 임진강 바로 건너 개성시 주민과 시장(인민위원장)의 장단콩 축제 참가를 기대했다. 최 시장은 통일의 중심 파주시가 개성시와 함께 비무장지대 안 장단역과 도라산역 주변에서 개성 인삼과 장단 콩을 재배해 비무장지대에서 공동으로 축제를 열면 그것이 곧 평화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장단콩 축제 마지막 날인 25일 불꽃이 북녘 하늘을 수 놓았다. 내년 ‘개성인삼축제’와 ‘장단콩축제’는 개성시 주민과 함께 하고 싶다는 ‘장단 콩 편지’처럼 보였다.
한국전쟁과 함께 파주에 주둔하기 시작한 주한미군은 지역경제와 밀접하게 연계됐다. 미군부대 주변으로 옷가게 등 일상용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상권이 형성됐고, 클럽, 세탁소 등 서비스업이 성행했다. 1960년대 미군교역처 청부업체인 신흥실업은 파주에 세탁공장을 세워 300여 명의 미혼여성을 고용해 연간 3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경남기업도 임진면(문산읍)에 종업원 200여 명 규모의 문산출장소를 열어 미군 세탁업에 뛰어들었다. 사진은 문산 운천리의 영진상운 옛 물류창고이다. 영진상운은 1969년 주한미군이사화물(Military Cargo)을 창업해 미군의 전역 물품이나 부대의 군수물자를 해외로 수송했다. 기지촌 사람들도 가족 등 해외 입양 자녀에게 생활용품을 보낼 때 영진상운을 이용했다. 한진상사는 미군부대에 물을 공급하는 물차 운영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은 1945년 11월 한진상사를 설립해 미군교역처와 군수물자 수송 사업권을 따냈다. 미군부대를 상대로 돈을 번 한진상사는 1969년 대한항공을 인수했다. 그러나 최근 대한항공은 ‘재벌 갑질’로 국민적 비판을 받고 있다. 파주에서 돈을 번 회사들은 1970년대
사진은 조리읍 민바리 개울에 있는 옛 미군 정수장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미군 물탱크라고 불렀다. 이 정수장은 1960년대 개울 물을 소독해 봉일천의 미군 제2보병사단 ‘캠프 하우즈’와 금촌의 미군 제2기갑부대에 공급했다. 허드렛물로 사용된 이 정수장 물은 소독약 냄새가 굉장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분말과 정제로 된 소독약을 얻어다가 우물에 넣었다. 우물 안의 장구벌레 등 세균이 소독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사람들은 이 정수장 물이 허드렛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드럼통을 리어카에 싣고 가 물을 얻어 아껴 먹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또 포대에 담긴 분말 소독약을 개울에 풀었다. 잠시 후 정신을 잃은 물고기가 하얀 배를 드러내면 가루를 곱게 칠 때 쓰는 ‘얼개미’나 모래 체로 만든 장대 달린 삼태기 모양의 망으로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소독약을 넣은 우물에서는 지렁이가 떠올랐다. ‘거생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지렁이는 흙 속의 세균이나 미생물 등 식물체의 부스러기와 동물의 배설물까지 먹어치우는 유익한 환형동물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수챗구멍에 뜨거운 물을 버리지 못하게 했다. 지렁이가 다 죽는다는 이유에서였다. 민바리 미군 물탱
사진은 북파주농협 콩·과수 유통종합처리장 준공식 모습이다. 파주시청이 제공한 사진을 들여다보면 가운데에 박정 국회의원 부인이 있고, 그 옆에 최종환 파주시장과 손배찬 파주시의회 의장이 서 있다. 이날 준공식의 주인공은 농협이다. 그런데 이장성 농협 파주시지부장과 조리농협 백운경 조합장은 가장자리에 있다. 파주시 행사 기념사진의 대부분은 가운데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권력 서열에 따라 자리를잡는다. 그러한 서열에 따라 내빈의 자리는 거의 판박이다. 이런 관행은 정작 축하받아야 할 그 행사의 주인공들을 권력의 들러리로 만든다. 이날 행사는 농협 지부장 등 농업인이 더 축하를 받아야 할 행사임에도 박정 국회의원의 부인이 가운데 자리를 잡고 기념 촬영을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파주시청이 이날 행사에 국회의원이 참석했다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보낸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시민들은 박정 국회의원이 후보 시절 부부와 함께 장단콩 축제 등 행사장에서의 설거지를 기억하고 있다.
현장사진연구소가 1980년대 민주화운동 사진집 준비를 위해 처박혀 있던 필름 뭉치를 꺼냈다. 20년 된 스캐너를 살살 달래가며 필름 속 사연을 끄집어냈다. 서울대생 김세진, 이재호, 박종철, 조성만, 연세대 이한열, 전남대 박승희, 안동대 김영균, 경원대 천세용, 명지대 강경대, 성균관대 김귀정 등등이 스캐너에 연결된 컴퓨터 화면에 살아났다. 사진은 1991년 5월 18일 서울 연세대 앞 경의선 철길에서 분신해 굴다리 아래로 떨어진 여성 노동자의 모습이다. 기자는 당시 명지대생 고 강경대 열사의 영결식을 취재하고 있었다. 장례행렬이 연세대 정문 앞을 지날 때 굴다리 위에서 불기둥이 치솟았다. 사진기자 10여 명이 굴다리 아래로 내달렸다. 기자는 현장 전체를 확인할 수 있는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두서너 명의 시민들이 웃옷을 벗어 불을 껐다. 그 뒤로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과 오른쪽의 사진기자들을 한 프레임에 담아 단숨에 필름 21컷을 넘겼다. 다음 날 ‘야만적인 한국의 사진기자’라는 제목으로 짤막한 홍콩발 기사가 하나 떴다. 사람이 불에 타는데도 사진만 찍고 있다는 지적의 기사였다. 정면에서 사진을 찍은 기자는 그 비판의 주인공이 됐다. 솔직히 기자는 그때
사진은 한국방송의 퀴즈프로그램 ‘도전 골든벨’을 울린 파주 문산 운천리의 여고생 옛집입니다. 골든벨이 울려퍼진 지 벌써 14년이 됐습니다. 이 집은 60년대 판문점 보니파스 경비대대 등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이 유흥을 즐기던 ‘댄스홀’이었습니다. 골든벨을 울린 여고생은 초등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로 중학교 진학을 했습니다. 부모님은 질병과 교통사고로 누워 계셨습니다. 실제 가장이 된 여고생은 오리를 키우며 힘겹게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자신의 키 두 배 정도의 책을 읽은 것이 골든벨을 울릴 수 있는 비결이었다고 했습니다. 이 댄스홀이 여고생의 이름을 딴 작은도서관으로 태어나면 어떨까요? 하늘이 참 높습니다. 하늘을 움직이는 건 구름입니다.
사진은 2016년 10월 22일 오전 9시 48분 문산 선유리 기지촌 골목에서 찍은 언론협동조합 파주바른신문 최병록 이사장의 생전 모습이다. 고 최병록 발행인은 1962년 12월 2일 바로 이 선유리 골목 집에서 태어나 2017년 7월 24일 새벽 신문 원고를 쓰던 중 숨졌다. 고 최병록 발행인은 파주 지역신문의 산증인이다. 1989년 파주신문 창간에 참여하면서 언론활동을 시작한 최병록 발행인은 신문사 운영을 위해 집을 담보로 보증을 서는 바람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게 지켰던 파주신문은 지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예금통장 역시 공동대표가 최병록 대표 몰래 은행에 분실신고를 내 비밀번호를 바꾸고 현금 600만 원을 가져갔다. 그 공동대표는 지금도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서울 홍대거리. 한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입양된 사람들이 모였다. 일행 중 낯익은 얼굴이 있다. 프랑스 세무공무원 엄선희(44) 씨다. 그 옆에는 초등학교 교사와 한국말을 배우러 온 젊은 청년도 있다. 엄 씨는 얼마 전 파주시가 반환 미군부대에 해외입양인을 위해 조성한 ‘엄마 품 동산’을 방문하려고 한국에 왔다. 엄 씨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도 못 한 ‘엄마 품 동산’을 파주시가 만들어준 것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라고 했다. 술자리 화제는 자연스레 파주로 쏠렸다. “파주에 와 봤어요?”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사진가가 일행에게 물었다. “파주에 한 번 가봤어요. 카페촌이었는데 어딘지는 잘 몰라요. 파주에 사는 친구와 함께 갔는데 카페가 쭉 있었어요.” 서울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의 대답이다. 파주토박이 이용남 사진가가 청년이 가봤다는 카페촌 위치를 파악하려고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되물으며 퍼즐 맞추기에 들어갔다. 드디어 위치가 확인됐다. 이 청년이 간 곳은 헤이리였다.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헤이리문화지구는 그저 카페촌에 불과했다. 파주 헤이리 판 아트 페스티벌 개막식장에서 “헤이리는 앞으로 초심찾기에 나설 겁니다. 너무 상업적이라는 지적
젖소 목장 옆에 탱크가 시동을 걸어놓은 채 작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새벽 4시. 굉음과 함께 탱크가 좁은 마을 길을 지그재그로 빠져나간다. 새벽잠을 설친 주민들이 밖으로 뛰쳐나오기를 수십여 년이다. 탱크가 햇볕에 널어놓은 벼를 짓밟고 가거나 농사용 트랙터를 들이받기는 다반사였다. 탱크훈련장을 만든다며 400여년 된 마을을 철거하고 주민을 내쫓기도 했다. 월롱산을 에워싼 훈련장의 탱크는 어느덧 당연한 일상이 됐다. 두 여중생이 탱크에 깔려 세상을 떠났다. 훈련이 시작되면 파주를 비롯 경기북부 도로는 탱크 물결이다. 파주사람은 그렇게 탱크와 살아왔다. 임진강 코스모스 행사장에 탱크가 전시됐다.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 안보의식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시각도 있고, 평화와 어울리지 않는 군사문화적 발상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리고 눈만 뜨면 지겨울 정도로 만나는 탱크를 행사장에까지 전시할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탱크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 행사장에 탱크를 전시하면 안보의식이 투철하고 그렇지 않으면 안보의식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해석은 분단생활의 트라우마가 아닐까. 분명한 것은 탱크가 안보
파주시 법원읍 웅담리 미군 기지촌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미군병사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입양된 이은숙(52, 미국명 Natasha Pruss) 씨가 파주시의 도움으로 호적과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등을 확인했다. 그 결과 자신의 호적상 성씨가 이 씨가 아니라 오 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오 씨는 52년 만에 성을 찾게 해 준 파주시에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은숙 씨는 1966년 천현면 웅담리에서 태어나 1973년 천현초 분교인 웅담초교에 입학해 5학년 때인 1978년 미국으로 입양돼 40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적남초교로 개교한 웅담초교는 무건리에서 웅담리로 이전해 있었다. 권혁문 교감 선생님이 은숙 씨를 반갑게 맞이했다. 서고를 두 시간여 뒤진 끝에 은숙 씨의 생활기록부를 찾았다. 은숙 씨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생활기록부에는 외할머니가 보호자로 기록돼 있었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은숙 씨의 학교 생활에 대해 ‘깨끗하고 항상 명랑하며 용의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다. 근면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음악과 무용에 재능이 있고 매우 열심히 노력한다. 건강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우등상을 두 번 받았다.’라고 꼼꼼하게 기록해 놓았다. 은숙 씨는 법원읍사무소 윤병렬 읍
자작나무가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자작나무는 돌담을 빼곡히 채운, 엄마 찾는 사연을 세상 어딘가 있을 엄마에게 전하고 있는 듯하다. 하늘이 파랗다 못해 시리다. 그렇게 맑은 날, 해외입양인의 고향, 엄마 품 동산이 둥지를 틀었다. 가수 인순이가 말한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울고 싶다고... 아시아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일컫는 아메라시안 150여 명이 12일 엄마 품 동산에 모였다. 곳곳이 눈물바다다. 그 옛날 엄마가 아궁이에 자작나무로 불을 지필 때도 그렇게 울었을까?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자신의 몸을 살라 ‘자작나무’가 됐다고 한다. 자작나무꽃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이다. 문산 선유리 기지촌 뒷산에는 자작나무가 많았다. 미군을 상대하다 죽은 기지촌 여성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산 주인에게 들킬세라 후다닥 봉분 없는 무덤을 만들고 꼭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자작나무를 심었다고도 한다. 자작나무는 엄마를 거름 삼아 쑥쑥 자랐다. 자작나무 껍질엔 기름이 많아 결혼식 화촉을 밝혔다. 엄마 품 동산의 자작나무는 엄마를 기다리는 나무다. 엄마 품 동산에 300여 명이 모였다. 사회자가 연신 내빈을 불러낸다. 최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