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교를 건널 때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가는데 밤 10시까지 미군과 놀고 다시 리비교로 나오면 휴... 하고 숨을 내쉬며 살았구나 했지. 임진강 건너에는 미군부대 가 천지였는데, 재수가 좋은 날이면 미군한테 10불, 20불도 받고, 재수 없으면 콜라 한 병도 못 얻어먹고 나온 날이 많아... ”
‘베기 박’(71)이 문산 선유리 미군 기지촌에 온 것은 17살 때인 1966년이었다. ‘베기 박’은 미군이 떠난 지금까지 선유리에 살고 있다. ‘베기 박’은 리비교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다. 어린 여성을 찾는 미군클럽 매니저 눈에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임진강 건너 미군부대에 불려갔다.
미군 전용 아리랑 택시를 타고 임진강 리비교 검문소를 지날 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한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면 구불구불 캄캄한 흙먼지 길을 따라 ‘리비교’를 다시 건너는데, 그때 임진강을 비추고 있는 군사용 조명이 그렇게 아름다웠다고 한다. ‘베기 박’은 그렇게 5년간 리비교를 건넜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임진강 건너에는 미군부대가 밀집했다. 초평도 옆에는 미군휴양시설인 ‘RC3’가 있어 위락시설과 대형마켓 등 물자가 풍부했다. 민통선 안에 있는 ‘RC3’는 민간인의 접근이 어려워 ‘리비교’ 입구는 미군부대 초청을 받은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베기 박’은 아리랑 택시 차창 밖으로 이런 광경을 내다보며 유유히 ‘리비교’를 건넜다.
파주에는 미군휴양시설인 RC1이 파주읍 용주골에, RC2가 법원읍 웅담리에, RC3가 진동면 진동리에, RC4가 문산읍 선유리에 있었다. 기지촌 규모도 휴양시설을 중심으로 번성했다. 1960년대 임진강 건너에는 캠프 클라인, 월리, 윈첼, 마타, 레딕, 영, 잭슨, 싯맨, 레벌리 레벨, 키티 호크 등의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일과를 마친 군인들이 ‘리비교’를 통해 외출했다. 리비교 입구에는 미군을 기다리는 여성들로 붐볐다. 이 때문에 파평면 장파리에는 극장은 물론 미군클럽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베기 박’의 기억처럼 달러벌이에 나섰던 기지촌 여성들의 애환이 배어 있는 임진강 ‘리비교’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1만 원에 인수했다며 자랑했던 ‘리비교’는 보수 보강공사에 215억 원을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근현대문화유산으로 등록도 못 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