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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식

따뜻하게 안아줘서 고마워요.


한국에서 혼혈로 태어나 미국 등 해외로 입양된 아메라시안(아시아 여성과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20여 명이 파주를 찾았다. 이들은 파주시의 안내로 DMZ와 출렁다리 등을 돌아보고 반환 미군부대 캠프 하우즈 안에 조성된 엄마의 품에서 그동안 가슴 속에 묻어뒀던 출생의 아픔과 이국의 삶을 털어놨다.

 

 이들은 24일 탄현면 낙하리에 있는 장어전문점 다온숲이 마련한 고구마 밭에서 농사 체험을 했다. 고구마캐기는 전 파주시농업기술센터 양용복 소장이 맡았다. 캔 고구마는 밭에서 바로 굽거나 삶아서 먹었다. 특히 이들은 고구마 줄기 반찬에 관심이 커 파주시의회 안소희, 최창호 의원에게 껍질 벗기는 요령을 배우기도 했다.

 

 김치 담그기 체험은 고구마캐기 다음날인 25일 파주시의 도움으로 수제맥주공장이 있는 다온숲 브루어리 정원에서 진행됐다. 혼혈인들은 맵지 않은 백김치 속을 배춧잎에 싸 서로 먹여주며 웃음을 나눴다. 이렇게 파주에 머무르는 동안 점심, 저녁식사는 다온숲과 메주꽃 음식점이 각각 제공했다.

 

 이날 다온숲 정원에서 혼혈입양인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건, 경기 안양에서 태어나 2주 만에 입양된, 흑인 혼혈인이 부른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할머니 추모곡이었다. 김 할머니는 지난 1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추모곡을 부른 이영식(57. 미국명 Georgia Burris-Jaye) 씨는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준 파주시와 마을 주민, 다온숲 관계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베풀어준 그 고마움을 미국에 돌아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꼭 자랑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저는 친어머니에 대해서 매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제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은 삶을 살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라는 한국 방문 소감을 밝혔다.

 

이영식 씨의 입양 사연은 이렇다.

제 이름은 조지아 버리스 제이입니다. 남편과 함께 캘리포니아 세크라멘토에 살고 있으며, 다섯 명의 자식과 8명의 아름다운 손녀들, 그리고 1명의 의붓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196281일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때 이름은 이영식이고 친부모님에 관한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저를 입양한 양부모님은 미국계 아프리카인인 그리버 버리스와 그의 한국인 아내 강해숙입니다. 입양기록에 따르면 두 분은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K-House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당시 저는 평화고아원(현재 평화보육원)에 있었고, 태어난 지 2주밖에 안 된 갓난아기였습니다. 양아버지는 한국에 주둔 중인 미군이었는데 저를 키우기 위해 집까지 빌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양아버지의 근무지가 일본으로 바뀌자 저를 송규환이라는 법적 후견인에게 맡겼다고 합니다. 저는 양부모님이 다시 데리러 올 때까지 그분과 함께 살았습니다.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저는 입양되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양아버지는 흑인, 양어머니는 한국인이었고, 저는 흑인과 한국인의 혼혈이었기 때문에 제 출생에 대해 의심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어머니는 제 입양 기록을 전부 불태우고 양아버지와 끝까지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나이 마흔에 우연히 제가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양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뒤였고, 양아버지는 치매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2006년에는 양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2014년 저는 문득문득 궁금했습니다. 한국에 살았더라면 내 삶은 더 나았을까? 고생을 하더라도 친어머니와 함께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저는 친어머니에 대해서 매일 생각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고 노래합니다. 제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좋은 삶을 살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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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남편 추억 깃든 ‘리비교’와 함께 떠난 미군위안부” 사진은 미군 기지촌 여성이 1960년대 중반 임진강 리비교를 배경으로 찍은 모습이다. 1936년생인 이 사진 속 여성은 얼마 전 세상을 마감했다. 마을에서 깜둥이 엄마로 불린 이 할머니는 스물여섯 살에 미군클럽과 유흥주점이 즐비한 파평면 장마루촌에 들어왔다. 파평면 장파리는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 촬영 장소와 가수 조용필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할머니는 매일 술 취한 미군이 득실대는 다방과 클럽에서 낮과 밤을 보냈다. 서쪽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임진강 리비교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리비교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1953년 7월 4일 건설했다. 임진강 너머 민간인통제구역 안에는 15개의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저녁이면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미제물건을 어깨에 들쳐 메고 리비교로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전국에서 양키물건을 사려는 사람들과 미군병사를 꼬셔 술집으로 데리고 가려는 포주, 클럽 여성들이 뒤섞여 리비교는 매일 전쟁터 같았다. 할머니도 나중에 아이 아버지가 된 흑인 미군병사 ‘존슨’을 리비교 앞에서 만났다. 둘은 월셋방을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당시 유행했던 계약결혼이다. 그리고 196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