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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상

“그녀는 낯선 거리에 서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녀가 운다. 기억도 없는 그 낯선 거리에 서서 소리 내어 운다. 45년 만에 돌아온 고향 땅 장마루촌에 그녀의 어머니는 없다.

 

 백수지는 1972512일 장마루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이름은 백수원이다. 아버지는 그녀의 피부색으로 보아 미군 흑인병사가 분명하다. 어머니는 그녀를 한 달 정도 키우다가 이웃에 맡기고 사라졌다. 미군이 장파리에서 철수할 때 따라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웃은 그녀를 홀트입양기관에 보냈다. 19781218일 미국으로 입양되면서 그녀의 이름은 카라이즈 코프만(Karise Coffman)’으로 바뀌었다. 양아버지 윌리엄은 루터교 목사였고 어머니 소냐는 교사였다.

 

 백수지는 6살 때까지 미시간 주에 살다가 시애틀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9살 때 양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 1년 동안 위탁기관에 맡겨졌다가 12살 때 영원히 집을 떠났다.

 

 이때부터 그녀의 삶은 방황이었다. 공동양육시설과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고, 15살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친구 집에서 살았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혼혈입양인의 사회적 냉대와 차별을 겪어야 했다.

 

 “저는 제 어머니(생모)가 저를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혼혈로 태어났기 때문이겠죠. 저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고, 사랑받을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오랫동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제 영혼에는 구멍이 나 있습니다. 그 구멍을 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제 친어머니를 만나는 것뿐입니다.”

 

 백수지가 눈물을 흘릴 때 그 곁에 파주 출신 혼혈인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심상호(미국명 Lowell Rojon)1955년 천현면(법원읍) 금곡리에서 흑인 혼혈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은 심형숙(1930년생)이다. 미국 몬타나 주에 살고 있는 이영순(Dianna Hould)1957년 주내면(파주읍) 파주리에서 백인 혼혈로 태어났다. 어머니 이름은 이순자이다. 그리고 1966년 조리면(조리읍) 오산리에서 태어나 미국에 입양된 백인 혼혈 안준석(Steve Walker)으로, 어머니 이름은 안정옥이다.

 

 이렇듯 장마루촌에는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마루촌의 역사를 말할 때 유명인이 거쳐 갔다거나 영화촬영지라고 자랑한다.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군사문화에 내몰린 수천여 미군 위안부와 그 혼혈인의 아픔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국회의원은 최근 외국병사 이름을 딴 임진강 다리를 안보관광지로 만들겠다고 하고, 어떤 정치인은 장마루촌을 유명인의 이름을 딴 거리로 만들자고 한다.

 

 곧 지방선거다. 후보들의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공약 대부분이 1991년 선거 때의 공약과 별반 다르지 않다. 후보들은 파주 발전에 온 몸을 던지겠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기지촌과 그 안의 어머니... 혼혈인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후보는 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어제(19) 경기도의회가 더불어민주당 박옥분 의원이 낸 경기도 미군 위안부 지원에 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는 것이다.

 


오늘의영상





조용필 “난 주로 ‘DMZ클럽’에 있었죠.” “조용필이 고등학교 때 장파리 ‘DMZ클럽’에서 수습밴드로 있었어요. 그러다가 잠시 ‘블루문홀’을 왔다 갔다 했지만 주로 ‘DMZ클럽’에 있었죠. ‘라스트찬스클럽’에는 없었어요. 거기는 가수 정훈희 남편 김태화밴드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장파리와 용주골 등 기지촌을 무대로 주먹 생활을 했던 김 아무개(73) 씨의 증언이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던 김 씨는 60년대 장파리 미군클럽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당시 장파리는 파평면이 아니라 적성면이었어요. 임진강 건너에 미군부대가 있어서 일과를 마친 미군들이 저녁이면 몰려나왔죠. 미군클럽이 ‘DMZ클럽’, ‘블루문홀’, ‘메트로홀’, ‘럭키바’, ‘라스트찬스’, ‘나이트클럽’ 등 6곳이 있었어요. 클럽마다 모두 전속 밴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죠. 내 기억에는 DMZ클럽에 앳킨스밴드, 블루문홀에 혹부리밴드, 라스트찬스에는 4인조로 구성된 김태화밴드가 있었습니다. 김태화밴드는 나중에 밴드 이름을 ‘라스트찬스’로 바꿨습니다.” “조용필은 18살 때인가 DMZ클럽에 잠깐 왔다가 며칠 못 있고 갔어요. 깜보음악(흑인 락)을 배우러 왔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때 조용필이 장파리를 떠나 용주골 세븐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다